기자가 되려는 대학생 등을 대상으로 1991년부터 개최해온 취업 정보 워크숍입니다.
매년 하반기에 무료로 열리며, 언론사 간부 및 젊은 기자들이 기자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언론사 취업에 도움되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2003 기자가 되는 길 (1부 녹취록)
작성일2004-10-11
조회수8183
세미나 중계
기자가 되는길
<1부> 기자는 어떤 일을 하는가?
임영숙 한국여기자클럽 회장: 첨단의 정보화 사회에서 언론사도 지금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고 저마다 뛰어난 인재를 찾아내기 위해서 애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자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다면 자신이 염두에 두고 있는 언론사의 기자채용 방식을 숙지해 두시면 훨씬 더 쉬우실 겁니다.
한국여기자클럽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신문방송사 여기자들 한 400여 명이 회원으로 있는 전문직 단체입니다. 여기자 출신 사장과 주필, 논설실장, 편집국장들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등장했습니다마는, 아직도 언론사에서 여성의 위치는 미약한 편입니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10%정도, 그래서 흔히 말하는 30%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런 자리를 마련하는 이유도 가능한 한 많은 여기자들이 언론사에 진출해서 양성평등 사회를 이루었으면 하는 바램에서입니다. 좋은 말씀 많이 들으시고 꿈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박선이(사회·한국여기자클럽 총무): 여러분들이 언론사 취업을 생각하시면서 실제로 기자라는 직업이 뭘 하는 건지, 무슨 작업을 하는지 또 어떤 조건에서 일을 하게 되는지 잘 모르실 거예요. 그래서 1부에서는 언론사 경력이 20년, 30년 된 자기 전문영역으로 들어가 계신 중견기자를 모시고 기자의 세계에 대해서 잠깐 말씀 들어 보겠습니다.
먼저 최춘애 KBS 국장급 해설위원을 소개합니다. 최춘애 국장이 KBS 보도국에서 정치, 경제, 사회 부분을 총괄하는 부 주간이 되셨어요. 뉴스의 제일 하드코어라고 할 분야에서 첫 번째 여성 데스크가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들 축하하는 마음을 속으로 가져주시고 어떻게 해서 그런 자리까지 가시게 될 수 있었는지 그런 말씀 듣겠습니다.
최춘애(KBS): 전 세계적으로 방송기자는 중노동이에요. 기자를 영어로 뭐라고 합니까? 리포터라고 하지요. 포터 앞에 ‘리’가 붙어요. 포터가 뭐 하는 사람입니까? 고된 중노동을 하는 사람이지요. 그런데 그 포터에 ‘리’가 붙습니다. 그게 기자 에요. 특히 방송기자는 여러분들이 입문하시게 된다면 굉장히 실감을 하시게 될 거예요. 저는 77년에 이 일을 시작을 했으니까 한 27년째가 되고, 80년에 언론통폐합 때 KBS로 옮겨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1980년 우리나라에 5공화국의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컬러TV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라디오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크던 시절 기자 생활을 시작해서 80년대, 90년대를 거쳐오면서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변천사를 몸으로 겪은 거지요.
여러분이 지금 너무나 공기처럼 숨쉬는 것처럼 익숙하게 보고 듣는 오늘날의 TV뉴스는 80년에 시작된 거예요. 기자가 화면 가득 얼굴을 내밀고 그렇게 되다 보니까 방송기자의 특장점이 필요하게 되었어요. 오디오 비디오가 텔레비전 메카니즘하고 갈등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거죠. 미남 미녀 미성이라야만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물론 사진을 잘 받으면 좋지요. 목소리가 설득력이 있으면 좋고 발음장애가 있다든지, 강세가 심한 사투리를 갖고 있다거나 그런 경우는 교정할 수 있습니다.
방송기자는 중노동이기 때문에 건강이 중요합니다. 굉장히 고달프면서도 10여 초라도 화면에 나와야 될 때, 기왕이면 시청자한테 깔끔한 인상을 줘야 하겠지요.
신문 방송 뉴스 접하며 순발력, 열린 사고의 유연성 길러야
기자는 굉장히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판단을 해야 돼요. 방송기자는 특히 순발력, 유연성, 열린 사고 이런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방송기자의 특성은 깊이 들어갈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인포메이션 중 무엇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그것을 어떻게 그림으로 보여줄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TV뉴스 리포트는 보통 1분 20초입니다. 시청자가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최대한의 길이가 1분 10초에서 1분 20초라는 거예요. 따라서 방송기자들에게는 아주 빠른 판단과 순발력이 요구되는 겁니다.
TV뉴스는 화면의 중요성이 굉장히 큽니다. 화면 때문에 이해가 빠르고 시청자한테 전달력이 높아지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집중하게 하는 효과를 떨어뜨릴 수도 있어요. TV앞에 앉아서 뚫어져라고 뉴스에 집중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지요. 대부분 편안한 자세로 앉거나 누워서 본단 말이에요. 누워서 봐도 ‘아! 무슨 소리인지 알겠어!’ 그럴 정도가 되어야지, 한순간이 넘어가면 돌이킬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방송 뉴스는 쉽고 간명해야 합니다. 문장은 철저하게 하드보일드 단문이라야 합니다. TV기자가 되고 싶으면 아주 간명한 사고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정보를 모아서 버리는 작업이에요. 버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확하게 알아야 버릴 수가 있어요.
TV뉴스 하나를 취재하려면 카메라 크루, 카메라맨과 오디오맨 그 다음에 물론 운전기사는 따라 붙고요, 그 다음에 취재기자가 합해 한 팀이 돼요. 기본적으로 그 사람들이 하루종일 함께 다니는 거예요, 9시 뉴스를 향하여. 9시 종합 뉴스에 25~26개 정도의 아이템이 나가요. 1분 20초라면 200자 원고지 예닐곱 장도 안 되거든요. 소파에 드러누워서 졸다말다 보는 사람이 “무슨 얘기야” 하고 TV 앞에 다가가게 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TV뉴스는 시청자 학력을 중학교 1~2학년이라고 봅니다. 어려운 말이 필요 없습니다. 철저하게 무지에서 출발해서 불독처럼 질기게 물고 들어가서 철저하게 확인과 검증을 하고 기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TV기자는 점점 스타가 되어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보면 “앵커우먼이 되고 싶어요”하고 시작하죠. 하지만 처음부터 앵커우먼이 될 수는 없어요. 신문의 논설위원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설위원, 즉 커멘테이터가 있는데, 아직 우리 방송에서는 개척의 여지가 많은 곳이에요. 앵커나 커멘테이터나 오랜 경험으로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핵심을 집어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 실력이 대단했던 분이 돌아가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세요. 어떤 인터뷰를 하든지 꼭 ‘야마’ (언론계 속어-핵심내용)를 잡아서 해요.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한번 물었더니 양반이 ‘나도 신방과 나왔잖아’ 그래요. 자기는 TV뉴스보고 신문 보면 다 거기서 가르쳐 준다는 거예요. 기자 생활 처음에는 그게 참 어려워요.
그러니 여러분이 기자가 되려면 평소에 신문, 방송 뉴스를 늘 접하고, 순발력이나 열린 사고의 유연함을 키워야 합니다.
KBS도 요즘 여기자 비율이 높아졌습니다. 30% 이상 40% 가까이 여기자들이 들어옵니다. 신문에서 한 1~2년 정도 있다가 방송기자로 전업을 한 케이스도 꽤 많고, 재수 삼수도 있습니다. 저는 여성이기 때문에 불이익도 받았지만 어떤 경우는 프리미엄을 누린 부분도 있을 겁니다. 바닥에서 정말 눈높이를 낮춰서 시작을 해야 합니다. 언론사는 의외로 보수적인 조직이에요. 굉장히 진보적인 주장을 하면서도 실제로 그 조직이 움직이는 맥락은 대단히 보수적이에요. 신데렐라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얼른 재정비하셔야 합니다.
질문: 면접관이 되신다면 어떤 점을 가장 중점적으로 보실 것 인지요?
최춘애: 면접관들마다 주안점이 다른데 순발력, 인내심, 포용력 같은 것을 우선해서 봅니다.
질문: 저희가 순발력을 키우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지, 체력조건은 어느 정도까지인지, 지금 여기자가 힘들다고 하셨는데, 어느 정도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요.
최춘애: 대규모 군중집회, 시위 현장에 갇혔어요. 취재는 해야 되는 거고, 그럴 때 어떻게 하겠어요. 시간에 쫓겨서 날밤을 새야 되는데, 굳이 비유를 하자면, 고3 막바지엔 안 자도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안 먹어도 배도 안 고프고 그러던 거 생각나시죠. 연애할 때 안 먹어도 배도 안 고프고 잠도 안 오고 그 두 가지 기분을 합해 놓은 열정을 요구한다고 할까요. 물론 매 순간 이럴 수는 없지요. 일이 씌우면 그런 거지요.
순발력을 어떻게 키우느냐라는 문제도, 제 경험으로 얘기하면 그것은 타고난 천성인 것 같아요. 좌우상하 잘 어울리고, 잘 참는 것. 잘 참는 것도 굉장한 능력이거든요.
질문: 아나운서가 되려면 오디오 훈련을 꼭 받아야 되는지요?
최춘애: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요즘 보면 나름대로 준비를 해 가지고 오더라고요. 학교방송 출신도 있고 혹은 아는 사람에게 지도를 받기도 하고. 시험과정에 오디오, 비디오 테스트가 있으니까 안 하는 것 보다 낫겠지요. 갑자기 온 카메라(방송에 얼굴이 나오는 것) 해야 될 때 뚝딱 한 2~3분 안에 약간의 메이컵을 할 수 있는 트레이닝도 필요하지만, 그런 것은 들어 와서 배워도 돼요.
질문: 방송의 화려한 면을 보지 말라고 강조하셨는데요. 후회하신 적이나 일을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신 적이 없는지 궁금합니다.
최춘애: 물론 있지요. 제가 일을 시작한 건 흑백 텔레비전 시절이고, 목소리 정도만 나갔거든요. 그 정도의 익명성이 주는 약간의 스릴, 약간의 현시욕과 허영심, 그런 게 딱 맞다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80년대에 컬러가 되면서 얼굴을 내놓으라고 하니까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몰라요.
너무 힘들 때도 있었지요. 특히 언론사가 보수적이고 또 여성에 대해 고정관념이 있었으니까요. 여성이 기자시험 보는 데 교수 추천서를 붙여야 원서 받아 주던 시절이 있었다면 무슨 말인가 싶으시겠죠. 사건 기자 훈련과정에 여자들은 빼버리기도 하고, 또 여기자한테는 편집부 일을 안 맡기기도 하고.....
송영주(한국일보): 편집위원이란 직책, 익숙지 않은 단어일 것 같아요. 기자, 부장, 논설위원이란 말을 들어 봐도 편집위원이 뭔가 하고 궁금하실 텐데요. 전문기자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국일보는 전문기자 시스템은 따로 없고 올해 같은 경우 1월에 6명의 편집위원들을 새로 발령 냈습니다. 작년에 사회부장, 문화부장, 체육부장 이런 부장을 지낸 베테랑 급 기자들인데요 입사 18년째인 제가 막내입니다.
편집위원들은 각자 전공분야를 맡아서 일주일에 한 면씩 기획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저는 기획기사만 쓰는 게 아니라 일주일에 5일, 매일 한 면씩 건강 면을 만들고 있습니다. 현장취재로 기사도 쓰고 데스크도 보고 있습니다.
기자의 세계란 정말 어떤 것인지 한번 여러분들이 가늠해 볼 수 있도록 제가 어떤 부서를 거쳤는지 말씀 드려보겠습니다. 85년에 입사했을 때 처음에 입사한 곳이 일간스포츠 레저부 였습니다. 체육부로 옮겨서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올림픽을 치렀습니다.
89년 한국일보로 옮겨 문화부에서 방송담당기자를 했고요. 그쯤에 결혼도 했습니다. 90년부터 의학담당을 하다가 다시 또 생활부로 발령이 나서 여성과 생활기사를 쓰다가 또다시 옮겨서 의학기사를 썼습니다. 가장 오래 일한 취재분야가 의학분야입니다. ‘명의’라는 시리즈를 연재했는데, 저 나름대로도 기자생활 17년 동안 가장 보람 있게 생각한 기획물 이었고 또 주위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아서 그 주제로 해외연수도 갔습니다.
한국일보에서는 제가 여기자로는 처음 연수를 다녀온 경우였습니다. 미국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에서 1년 동안 공부하고 돌아왔을 때 제 나름대로는 의학기자로서 정말 왕성하게 일할 수 있겠구나 했는데, 회사 인사시스템이 연수 다녀온 사람은 무슨 의무 복무처럼 주간 한국부 에서 일하도록 되어 있었어요. 거기서 3년을 일하면서 좌절도 있었지만, 그 동안 제가 취재해 보지 않았던 영역도 한번 취재해 보자는 생각을 했지요. 정치인도 만나서 인터뷰도 하고 경제 쪽 기사도 쓰면서 연세대 보건대학원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는 언젠가는 의학담당기자로 되돌아갈 수 있겠지 하고 기대를 했는데 엉뚱하게 문화부 차장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난데없이 미술담당을 했는데, 좌절감보다는 데스크가 되려면 이렇게 많은 분야를 겪어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언론사마다 시스템이 다르긴 하지만, 한 15년 정도 현역기자로 뛰고 나면 차장이 되고 중간 데스크와 취재를 동시에 겸하면서 한 3~4년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나면 부장이 되고 글 쓰는 현역에서 거의 떠나게 됩니다. 제가 그래서 마지막으로 다시 의학분야에 가고 싶다고 회사에 강력하게 요구를 했습니다. 그래서 의학기자로 드디어 다시 돌아오게 되었는데, 한 6개월 일하다가 생활과학부장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제가 꿈에도 그리던 현장에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전문성 갖추기 위한 의욕, 열정, 부지런함이 중요
여러분들 생각에는 의학 취재가 뭐 그렇게 재미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시고, 저의 약력을 보면서 의사도 아니면서 뭐 그렇게 이럴까? 이런 생각을 하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분명합니다. 첫째, 건강분야만큼 역동적인 분야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의학기사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굉장히 흐름이 많이 바뀌는 것 같습니다.
90년대 초반에 제가 썼던 의학기사들은 주로 질병치료에 관한 기사였습니다. 그래서 이 병에는 어떤 치료법이 있으니까 뭘 한다 이런 기사였다면, 지금은 질병치료에서 한 단계 나아가서 질병예방의 시대가 되었거든요. 그래서 건강 증진 쪽으로 무엇을 예방하려면 우리가 운동을 어떻게 해야 된다든지 이런 식으로 기사의 흐름도 바뀌고 있고요. 또 의학뿐만 아니라 한의학, 약학 기사들도 쓰고요. 또 신약이 좀 많이 나옵니까? 여러분들 알다시피 비아그라, 폐암치료제 이레싸, 대머리 치료약 프로페션 등 나올 때마다 저는 너무너무 전율하면서 너무나 재미있게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그것만 아닙니다. 여러분 국선도, 요가, 단학 이것도 제 분야입니다. 주요 출입처인 대학병원이 전국에 40개가 넘습니다. 몇 집 건너 약국, 의원 다 저의 영역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일이 흥미진진하겠습니까? 그리고 사실 신문사에서도 건강분야에는 굉장히 많은 기자들을 투입하고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여러분들도 건강섹션들 많이 보셨겠지요. 8페이지 보통 섹션인데요. 어떤 신문은 8페이지 섹션에서 광고 두 쪽을 빼고 6페이지를 건강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도 건강 면에 관심을 많이 쏟아서 하루에 한 면씩 일주일에 5개 면을 만들고 있을 정도입니다.
독자들의 반응도 굉장한데요. 아마 정치기사를 쓰면 정치의 첨예한 논란의 대상인 사람들만 전화 올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건강 면은 주로 환자들이 보고 가족들이 봅니다. 삶과 죽음을 오락가락 하는 곳이라 생각한다면 정말 얼마나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운지 아실 겁니다.
제가 이라크 전쟁 기간 동안에 외신을 전부 체크해 봤는데요. 그 동안 여러 종류의 다양한 외신들이 나가다가 전부 전쟁기사로 다 바뀌었는데 유일하게 외신 중에 건강 외신은 계속 뜨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전쟁이 나도 건강기사는 계속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의학 건강분야의 전문기자가 될 수 있는가 궁금하실 겁니다. 대략 2가지 길이 있습니다. 저처럼 신문사 내부에서 양성을 하는 것과 의사를 영입하는 것입니다. 의사 출신이 많을 것으로 여러분 생각하시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수적으로 아주 손꼽을 정도고, 내부에서 양성되는 의학 전문기자들이 더 많습니다.
보통 신문사 시스템은 처음에 입사해서 한 5년 동안은 3개 내지 5개 부서를 돌아갑니다. 그러면서 기자 본인도 자기의 적성을 찾고, 경영진도 이 기자는 어느 분야가 가장 적합한 기자인가 이렇게 나름대로 평가를 하게 됩니다.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저처럼 보건대학원을 진학해서 공부하는 의학담당 기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전문가 출신의 경우도 많습니다. 의학기자인 경우 의사나 약사, 한의사 출신들도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신문사에서 보면 마케팅 효과 면에서 굉장히 좋을 것 같고요. 전문가 출신이 반드시 더 좋은가? 그 평가는 사실 엇갈립니다. 의사 기자들의 장점은 많습니다. 네트워크가 잘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취재원을 만날 때 더 쉽고 신속하게 만날 수 있을 것 같고요. 또 아마 어떤 큰 사건이 터졌을 때 심층기사나 해설기사를 더 능력 있게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기사 쓰는 실력인데요. 저는 일반기자들도 얼마든지 전문가로서 기사를 쓸 수 있고 한 3년 내지 5년만 지나면 어떤 전문가 못지 않은 깊이 있는 기사를 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문기자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 중에 더 중요한 것은 열정이라든지 의욕, 그리고 부지런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턴 경험 통해 기자 직업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 갖기를
여러분들이 기자가 되고 싶어서 오셨고, 그 다음에 기자 공부를 하면서 어떤 기자가 되어야 할까? 그런 생각도 동시에 가지면서 준비를 하셨으면 합니다.
당부 드리고 싶은 말은 기자에 대한 밝은 면만 너무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말 저는 일을 하면서 아까 누군가가 얼마나 체력이 받쳐줘야 되느냐고 질문을 했는데요, 정말 노동 강도가 너무나 센 곳이 이 언론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작년에 제가 부장을 했을 때는 9시 30분에 출근해서 가장 빨리 집에 돌아가는 시간이 9시 정도였고요, 토요일은 쉬고 매주 일요일은 나갔습니다. 그리고 한 8일이나 10일에 한번 꼴로 야근을 합니다. 야근을 한다는 게 새벽 4시에 집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저도 결혼을 한 사람인데 정말 남편 볼 시간도 많지 않고 아이를 돌봐 줄 시간도 많이 없었습니다. 본인이 앞으로 살 때 정말 무엇에 가치를 둘 것인가 생각하고 기자 직업을 택하세요.
그래서 저는 인턴을 해보라고 권장하고 싶습니다. 짧게는 일주일, 아니면 한달 정도 거기서 경험을 해 보면 정말 언론사가 어떤 곳이구나! 나의 평생을 걸만한 곳이구나!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한국일보에, 특히 의학분야에 관심 있는 기자라면 한번 저한테 연락을 주십시오. 그럼 제가 많이 도와 드리겠습니다.
사회자: 동료로 볼 때 송영주 위원은 굉장히 운이 좋은 편이에요. 기자생활 20년 가까이 해 가지고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기자라는 타이틀을 받기가 사실 굉장히 힘들어요. 자기 뜻대로, 내가 이 분야가 좋아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그 분야에서 일하도록 두지 않거든요. 송영주 위원께서 계속 꾸준히 자기 한 분야를 찾아서 대학원 다니고 연수도 갖다 오고 책도 쓰고 그러니까 의학담당 기자로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단계까지 올 수 있었던 겁니다.
질문: 어떤 경로를 통해 전문기자가 될 수 있습니까. 또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요.
송영주: 언론사마다 조금 시스템이 다릅니다. 한국일보 같은 경우 작년에 전문기자만 따로 채용하면서 공고를 했습니다. 정기적이진 않고 수시로 모집을 합니다. 지난해에는 음악 전문기자를 뽑아서, 음대 작곡과 출신이 한 명 입사했습니다. 전문기자 채용방법도 일반기자 채용 때처럼 국어 영어 상식 같은 시험을 보고요. 전문가로서의 면접을 통해서 테스트를 하는 정도입니다.
질문: 아이들 기르는 문제가 먼 얘기가 아니잖아요. 야근을 밥먹듯 한다면, 자녀 돌보는 도움은 어디서 받으셨고 회사에서 그런 지원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요.
송영주: 정말 심각합니다. KBS는 직장 육아시설이 있습니다만, 한국일보를 비롯해서 대부분 언론사는 육아시설이 따로 없습니다. 친정이나 시댁의 도움을 많이 받기 마련인데요. 정말 희생을 필요로 합니다. 저도 너무 고통을 겪다가 한 차례 휴직을 하기도 했습니다.
질문: 뉴스나 잡지 보면 간혹 현지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이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경우를 봅니다. 어떻게 해서 이루어지는지 궁금하거든요.
송영주: 아마 종합일간지에서는 그런 시스템은 별로 활발하지 않은 것 같고, 스포츠지 같은 경우 발랄한 젊은 소식들을 원하기 때문에 그럴 때 통신원으로 쓰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은 제 생각에 공개채용을 하기보다는 알음알음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생각이 있다면 언론사로 이메일을 보내 본인이 어떤 일을 하고 싶고 지금 어떤 경력을 쌓았으며 어떤 기사를 보낼 수 있다고 제안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질문: 처음 기자를 왜 하고 싶으셨는지, 또 그때 당시 생각과 지금 생각하는 기자 생활을 어떻게 말씀하실 수 있는지요.
송영주: ‘기자란 살아서 팔딱팔딱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고 한마디로 요약하고 싶습니다. 저는 기자란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TV드라마나 신문의 멋들어진 글을 보고 나도 이런 멋진 인생을 한번 살아보겠다, 그런 밝은 면만 보고 지망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18년을 보내며, 일에 대한 불만은 없습니다. 일은 보람차고 재미있지만, 희생해야 될 부분도 많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자가 되는길
<1부> 기자는 어떤 일을 하는가?
임영숙 한국여기자클럽 회장: 첨단의 정보화 사회에서 언론사도 지금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고 저마다 뛰어난 인재를 찾아내기 위해서 애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자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다면 자신이 염두에 두고 있는 언론사의 기자채용 방식을 숙지해 두시면 훨씬 더 쉬우실 겁니다.
한국여기자클럽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신문방송사 여기자들 한 400여 명이 회원으로 있는 전문직 단체입니다. 여기자 출신 사장과 주필, 논설실장, 편집국장들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등장했습니다마는, 아직도 언론사에서 여성의 위치는 미약한 편입니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10%정도, 그래서 흔히 말하는 30%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런 자리를 마련하는 이유도 가능한 한 많은 여기자들이 언론사에 진출해서 양성평등 사회를 이루었으면 하는 바램에서입니다. 좋은 말씀 많이 들으시고 꿈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박선이(사회·한국여기자클럽 총무): 여러분들이 언론사 취업을 생각하시면서 실제로 기자라는 직업이 뭘 하는 건지, 무슨 작업을 하는지 또 어떤 조건에서 일을 하게 되는지 잘 모르실 거예요. 그래서 1부에서는 언론사 경력이 20년, 30년 된 자기 전문영역으로 들어가 계신 중견기자를 모시고 기자의 세계에 대해서 잠깐 말씀 들어 보겠습니다.
먼저 최춘애 KBS 국장급 해설위원을 소개합니다. 최춘애 국장이 KBS 보도국에서 정치, 경제, 사회 부분을 총괄하는 부 주간이 되셨어요. 뉴스의 제일 하드코어라고 할 분야에서 첫 번째 여성 데스크가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들 축하하는 마음을 속으로 가져주시고 어떻게 해서 그런 자리까지 가시게 될 수 있었는지 그런 말씀 듣겠습니다.
최춘애(KBS): 전 세계적으로 방송기자는 중노동이에요. 기자를 영어로 뭐라고 합니까? 리포터라고 하지요. 포터 앞에 ‘리’가 붙어요. 포터가 뭐 하는 사람입니까? 고된 중노동을 하는 사람이지요. 그런데 그 포터에 ‘리’가 붙습니다. 그게 기자 에요. 특히 방송기자는 여러분들이 입문하시게 된다면 굉장히 실감을 하시게 될 거예요. 저는 77년에 이 일을 시작을 했으니까 한 27년째가 되고, 80년에 언론통폐합 때 KBS로 옮겨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1980년 우리나라에 5공화국의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컬러TV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라디오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크던 시절 기자 생활을 시작해서 80년대, 90년대를 거쳐오면서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변천사를 몸으로 겪은 거지요.
여러분이 지금 너무나 공기처럼 숨쉬는 것처럼 익숙하게 보고 듣는 오늘날의 TV뉴스는 80년에 시작된 거예요. 기자가 화면 가득 얼굴을 내밀고 그렇게 되다 보니까 방송기자의 특장점이 필요하게 되었어요. 오디오 비디오가 텔레비전 메카니즘하고 갈등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거죠. 미남 미녀 미성이라야만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물론 사진을 잘 받으면 좋지요. 목소리가 설득력이 있으면 좋고 발음장애가 있다든지, 강세가 심한 사투리를 갖고 있다거나 그런 경우는 교정할 수 있습니다.
방송기자는 중노동이기 때문에 건강이 중요합니다. 굉장히 고달프면서도 10여 초라도 화면에 나와야 될 때, 기왕이면 시청자한테 깔끔한 인상을 줘야 하겠지요.
신문 방송 뉴스 접하며 순발력, 열린 사고의 유연성 길러야
기자는 굉장히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판단을 해야 돼요. 방송기자는 특히 순발력, 유연성, 열린 사고 이런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방송기자의 특성은 깊이 들어갈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인포메이션 중 무엇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그것을 어떻게 그림으로 보여줄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TV뉴스 리포트는 보통 1분 20초입니다. 시청자가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최대한의 길이가 1분 10초에서 1분 20초라는 거예요. 따라서 방송기자들에게는 아주 빠른 판단과 순발력이 요구되는 겁니다.
TV뉴스는 화면의 중요성이 굉장히 큽니다. 화면 때문에 이해가 빠르고 시청자한테 전달력이 높아지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집중하게 하는 효과를 떨어뜨릴 수도 있어요. TV앞에 앉아서 뚫어져라고 뉴스에 집중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지요. 대부분 편안한 자세로 앉거나 누워서 본단 말이에요. 누워서 봐도 ‘아! 무슨 소리인지 알겠어!’ 그럴 정도가 되어야지, 한순간이 넘어가면 돌이킬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방송 뉴스는 쉽고 간명해야 합니다. 문장은 철저하게 하드보일드 단문이라야 합니다. TV기자가 되고 싶으면 아주 간명한 사고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정보를 모아서 버리는 작업이에요. 버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확하게 알아야 버릴 수가 있어요.
TV뉴스 하나를 취재하려면 카메라 크루, 카메라맨과 오디오맨 그 다음에 물론 운전기사는 따라 붙고요, 그 다음에 취재기자가 합해 한 팀이 돼요. 기본적으로 그 사람들이 하루종일 함께 다니는 거예요, 9시 뉴스를 향하여. 9시 종합 뉴스에 25~26개 정도의 아이템이 나가요. 1분 20초라면 200자 원고지 예닐곱 장도 안 되거든요. 소파에 드러누워서 졸다말다 보는 사람이 “무슨 얘기야” 하고 TV 앞에 다가가게 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TV뉴스는 시청자 학력을 중학교 1~2학년이라고 봅니다. 어려운 말이 필요 없습니다. 철저하게 무지에서 출발해서 불독처럼 질기게 물고 들어가서 철저하게 확인과 검증을 하고 기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TV기자는 점점 스타가 되어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보면 “앵커우먼이 되고 싶어요”하고 시작하죠. 하지만 처음부터 앵커우먼이 될 수는 없어요. 신문의 논설위원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설위원, 즉 커멘테이터가 있는데, 아직 우리 방송에서는 개척의 여지가 많은 곳이에요. 앵커나 커멘테이터나 오랜 경험으로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핵심을 집어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 실력이 대단했던 분이 돌아가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세요. 어떤 인터뷰를 하든지 꼭 ‘야마’ (언론계 속어-핵심내용)를 잡아서 해요.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한번 물었더니 양반이 ‘나도 신방과 나왔잖아’ 그래요. 자기는 TV뉴스보고 신문 보면 다 거기서 가르쳐 준다는 거예요. 기자 생활 처음에는 그게 참 어려워요.
그러니 여러분이 기자가 되려면 평소에 신문, 방송 뉴스를 늘 접하고, 순발력이나 열린 사고의 유연함을 키워야 합니다.
KBS도 요즘 여기자 비율이 높아졌습니다. 30% 이상 40% 가까이 여기자들이 들어옵니다. 신문에서 한 1~2년 정도 있다가 방송기자로 전업을 한 케이스도 꽤 많고, 재수 삼수도 있습니다. 저는 여성이기 때문에 불이익도 받았지만 어떤 경우는 프리미엄을 누린 부분도 있을 겁니다. 바닥에서 정말 눈높이를 낮춰서 시작을 해야 합니다. 언론사는 의외로 보수적인 조직이에요. 굉장히 진보적인 주장을 하면서도 실제로 그 조직이 움직이는 맥락은 대단히 보수적이에요. 신데렐라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얼른 재정비하셔야 합니다.
질문: 면접관이 되신다면 어떤 점을 가장 중점적으로 보실 것 인지요?
최춘애: 면접관들마다 주안점이 다른데 순발력, 인내심, 포용력 같은 것을 우선해서 봅니다.
질문: 저희가 순발력을 키우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지, 체력조건은 어느 정도까지인지, 지금 여기자가 힘들다고 하셨는데, 어느 정도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요.
최춘애: 대규모 군중집회, 시위 현장에 갇혔어요. 취재는 해야 되는 거고, 그럴 때 어떻게 하겠어요. 시간에 쫓겨서 날밤을 새야 되는데, 굳이 비유를 하자면, 고3 막바지엔 안 자도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안 먹어도 배도 안 고프고 그러던 거 생각나시죠. 연애할 때 안 먹어도 배도 안 고프고 잠도 안 오고 그 두 가지 기분을 합해 놓은 열정을 요구한다고 할까요. 물론 매 순간 이럴 수는 없지요. 일이 씌우면 그런 거지요.
순발력을 어떻게 키우느냐라는 문제도, 제 경험으로 얘기하면 그것은 타고난 천성인 것 같아요. 좌우상하 잘 어울리고, 잘 참는 것. 잘 참는 것도 굉장한 능력이거든요.
질문: 아나운서가 되려면 오디오 훈련을 꼭 받아야 되는지요?
최춘애: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요즘 보면 나름대로 준비를 해 가지고 오더라고요. 학교방송 출신도 있고 혹은 아는 사람에게 지도를 받기도 하고. 시험과정에 오디오, 비디오 테스트가 있으니까 안 하는 것 보다 낫겠지요. 갑자기 온 카메라(방송에 얼굴이 나오는 것) 해야 될 때 뚝딱 한 2~3분 안에 약간의 메이컵을 할 수 있는 트레이닝도 필요하지만, 그런 것은 들어 와서 배워도 돼요.
질문: 방송의 화려한 면을 보지 말라고 강조하셨는데요. 후회하신 적이나 일을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신 적이 없는지 궁금합니다.
최춘애: 물론 있지요. 제가 일을 시작한 건 흑백 텔레비전 시절이고, 목소리 정도만 나갔거든요. 그 정도의 익명성이 주는 약간의 스릴, 약간의 현시욕과 허영심, 그런 게 딱 맞다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80년대에 컬러가 되면서 얼굴을 내놓으라고 하니까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몰라요.
너무 힘들 때도 있었지요. 특히 언론사가 보수적이고 또 여성에 대해 고정관념이 있었으니까요. 여성이 기자시험 보는 데 교수 추천서를 붙여야 원서 받아 주던 시절이 있었다면 무슨 말인가 싶으시겠죠. 사건 기자 훈련과정에 여자들은 빼버리기도 하고, 또 여기자한테는 편집부 일을 안 맡기기도 하고.....
송영주(한국일보): 편집위원이란 직책, 익숙지 않은 단어일 것 같아요. 기자, 부장, 논설위원이란 말을 들어 봐도 편집위원이 뭔가 하고 궁금하실 텐데요. 전문기자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국일보는 전문기자 시스템은 따로 없고 올해 같은 경우 1월에 6명의 편집위원들을 새로 발령 냈습니다. 작년에 사회부장, 문화부장, 체육부장 이런 부장을 지낸 베테랑 급 기자들인데요 입사 18년째인 제가 막내입니다.
편집위원들은 각자 전공분야를 맡아서 일주일에 한 면씩 기획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저는 기획기사만 쓰는 게 아니라 일주일에 5일, 매일 한 면씩 건강 면을 만들고 있습니다. 현장취재로 기사도 쓰고 데스크도 보고 있습니다.
기자의 세계란 정말 어떤 것인지 한번 여러분들이 가늠해 볼 수 있도록 제가 어떤 부서를 거쳤는지 말씀 드려보겠습니다. 85년에 입사했을 때 처음에 입사한 곳이 일간스포츠 레저부 였습니다. 체육부로 옮겨서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올림픽을 치렀습니다.
89년 한국일보로 옮겨 문화부에서 방송담당기자를 했고요. 그쯤에 결혼도 했습니다. 90년부터 의학담당을 하다가 다시 또 생활부로 발령이 나서 여성과 생활기사를 쓰다가 또다시 옮겨서 의학기사를 썼습니다. 가장 오래 일한 취재분야가 의학분야입니다. ‘명의’라는 시리즈를 연재했는데, 저 나름대로도 기자생활 17년 동안 가장 보람 있게 생각한 기획물 이었고 또 주위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아서 그 주제로 해외연수도 갔습니다.
한국일보에서는 제가 여기자로는 처음 연수를 다녀온 경우였습니다. 미국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에서 1년 동안 공부하고 돌아왔을 때 제 나름대로는 의학기자로서 정말 왕성하게 일할 수 있겠구나 했는데, 회사 인사시스템이 연수 다녀온 사람은 무슨 의무 복무처럼 주간 한국부 에서 일하도록 되어 있었어요. 거기서 3년을 일하면서 좌절도 있었지만, 그 동안 제가 취재해 보지 않았던 영역도 한번 취재해 보자는 생각을 했지요. 정치인도 만나서 인터뷰도 하고 경제 쪽 기사도 쓰면서 연세대 보건대학원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는 언젠가는 의학담당기자로 되돌아갈 수 있겠지 하고 기대를 했는데 엉뚱하게 문화부 차장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난데없이 미술담당을 했는데, 좌절감보다는 데스크가 되려면 이렇게 많은 분야를 겪어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언론사마다 시스템이 다르긴 하지만, 한 15년 정도 현역기자로 뛰고 나면 차장이 되고 중간 데스크와 취재를 동시에 겸하면서 한 3~4년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나면 부장이 되고 글 쓰는 현역에서 거의 떠나게 됩니다. 제가 그래서 마지막으로 다시 의학분야에 가고 싶다고 회사에 강력하게 요구를 했습니다. 그래서 의학기자로 드디어 다시 돌아오게 되었는데, 한 6개월 일하다가 생활과학부장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제가 꿈에도 그리던 현장에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전문성 갖추기 위한 의욕, 열정, 부지런함이 중요
여러분들 생각에는 의학 취재가 뭐 그렇게 재미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시고, 저의 약력을 보면서 의사도 아니면서 뭐 그렇게 이럴까? 이런 생각을 하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분명합니다. 첫째, 건강분야만큼 역동적인 분야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의학기사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굉장히 흐름이 많이 바뀌는 것 같습니다.
90년대 초반에 제가 썼던 의학기사들은 주로 질병치료에 관한 기사였습니다. 그래서 이 병에는 어떤 치료법이 있으니까 뭘 한다 이런 기사였다면, 지금은 질병치료에서 한 단계 나아가서 질병예방의 시대가 되었거든요. 그래서 건강 증진 쪽으로 무엇을 예방하려면 우리가 운동을 어떻게 해야 된다든지 이런 식으로 기사의 흐름도 바뀌고 있고요. 또 의학뿐만 아니라 한의학, 약학 기사들도 쓰고요. 또 신약이 좀 많이 나옵니까? 여러분들 알다시피 비아그라, 폐암치료제 이레싸, 대머리 치료약 프로페션 등 나올 때마다 저는 너무너무 전율하면서 너무나 재미있게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그것만 아닙니다. 여러분 국선도, 요가, 단학 이것도 제 분야입니다. 주요 출입처인 대학병원이 전국에 40개가 넘습니다. 몇 집 건너 약국, 의원 다 저의 영역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일이 흥미진진하겠습니까? 그리고 사실 신문사에서도 건강분야에는 굉장히 많은 기자들을 투입하고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여러분들도 건강섹션들 많이 보셨겠지요. 8페이지 보통 섹션인데요. 어떤 신문은 8페이지 섹션에서 광고 두 쪽을 빼고 6페이지를 건강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도 건강 면에 관심을 많이 쏟아서 하루에 한 면씩 일주일에 5개 면을 만들고 있을 정도입니다.
독자들의 반응도 굉장한데요. 아마 정치기사를 쓰면 정치의 첨예한 논란의 대상인 사람들만 전화 올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건강 면은 주로 환자들이 보고 가족들이 봅니다. 삶과 죽음을 오락가락 하는 곳이라 생각한다면 정말 얼마나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운지 아실 겁니다.
제가 이라크 전쟁 기간 동안에 외신을 전부 체크해 봤는데요. 그 동안 여러 종류의 다양한 외신들이 나가다가 전부 전쟁기사로 다 바뀌었는데 유일하게 외신 중에 건강 외신은 계속 뜨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전쟁이 나도 건강기사는 계속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의학 건강분야의 전문기자가 될 수 있는가 궁금하실 겁니다. 대략 2가지 길이 있습니다. 저처럼 신문사 내부에서 양성을 하는 것과 의사를 영입하는 것입니다. 의사 출신이 많을 것으로 여러분 생각하시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수적으로 아주 손꼽을 정도고, 내부에서 양성되는 의학 전문기자들이 더 많습니다.
보통 신문사 시스템은 처음에 입사해서 한 5년 동안은 3개 내지 5개 부서를 돌아갑니다. 그러면서 기자 본인도 자기의 적성을 찾고, 경영진도 이 기자는 어느 분야가 가장 적합한 기자인가 이렇게 나름대로 평가를 하게 됩니다.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저처럼 보건대학원을 진학해서 공부하는 의학담당 기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전문가 출신의 경우도 많습니다. 의학기자인 경우 의사나 약사, 한의사 출신들도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신문사에서 보면 마케팅 효과 면에서 굉장히 좋을 것 같고요. 전문가 출신이 반드시 더 좋은가? 그 평가는 사실 엇갈립니다. 의사 기자들의 장점은 많습니다. 네트워크가 잘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취재원을 만날 때 더 쉽고 신속하게 만날 수 있을 것 같고요. 또 아마 어떤 큰 사건이 터졌을 때 심층기사나 해설기사를 더 능력 있게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기사 쓰는 실력인데요. 저는 일반기자들도 얼마든지 전문가로서 기사를 쓸 수 있고 한 3년 내지 5년만 지나면 어떤 전문가 못지 않은 깊이 있는 기사를 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문기자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 중에 더 중요한 것은 열정이라든지 의욕, 그리고 부지런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턴 경험 통해 기자 직업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 갖기를
여러분들이 기자가 되고 싶어서 오셨고, 그 다음에 기자 공부를 하면서 어떤 기자가 되어야 할까? 그런 생각도 동시에 가지면서 준비를 하셨으면 합니다.
당부 드리고 싶은 말은 기자에 대한 밝은 면만 너무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말 저는 일을 하면서 아까 누군가가 얼마나 체력이 받쳐줘야 되느냐고 질문을 했는데요, 정말 노동 강도가 너무나 센 곳이 이 언론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작년에 제가 부장을 했을 때는 9시 30분에 출근해서 가장 빨리 집에 돌아가는 시간이 9시 정도였고요, 토요일은 쉬고 매주 일요일은 나갔습니다. 그리고 한 8일이나 10일에 한번 꼴로 야근을 합니다. 야근을 한다는 게 새벽 4시에 집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저도 결혼을 한 사람인데 정말 남편 볼 시간도 많지 않고 아이를 돌봐 줄 시간도 많이 없었습니다. 본인이 앞으로 살 때 정말 무엇에 가치를 둘 것인가 생각하고 기자 직업을 택하세요.
그래서 저는 인턴을 해보라고 권장하고 싶습니다. 짧게는 일주일, 아니면 한달 정도 거기서 경험을 해 보면 정말 언론사가 어떤 곳이구나! 나의 평생을 걸만한 곳이구나!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한국일보에, 특히 의학분야에 관심 있는 기자라면 한번 저한테 연락을 주십시오. 그럼 제가 많이 도와 드리겠습니다.
사회자: 동료로 볼 때 송영주 위원은 굉장히 운이 좋은 편이에요. 기자생활 20년 가까이 해 가지고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기자라는 타이틀을 받기가 사실 굉장히 힘들어요. 자기 뜻대로, 내가 이 분야가 좋아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그 분야에서 일하도록 두지 않거든요. 송영주 위원께서 계속 꾸준히 자기 한 분야를 찾아서 대학원 다니고 연수도 갖다 오고 책도 쓰고 그러니까 의학담당 기자로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단계까지 올 수 있었던 겁니다.
질문: 어떤 경로를 통해 전문기자가 될 수 있습니까. 또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요.
송영주: 언론사마다 조금 시스템이 다릅니다. 한국일보 같은 경우 작년에 전문기자만 따로 채용하면서 공고를 했습니다. 정기적이진 않고 수시로 모집을 합니다. 지난해에는 음악 전문기자를 뽑아서, 음대 작곡과 출신이 한 명 입사했습니다. 전문기자 채용방법도 일반기자 채용 때처럼 국어 영어 상식 같은 시험을 보고요. 전문가로서의 면접을 통해서 테스트를 하는 정도입니다.
질문: 아이들 기르는 문제가 먼 얘기가 아니잖아요. 야근을 밥먹듯 한다면, 자녀 돌보는 도움은 어디서 받으셨고 회사에서 그런 지원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요.
송영주: 정말 심각합니다. KBS는 직장 육아시설이 있습니다만, 한국일보를 비롯해서 대부분 언론사는 육아시설이 따로 없습니다. 친정이나 시댁의 도움을 많이 받기 마련인데요. 정말 희생을 필요로 합니다. 저도 너무 고통을 겪다가 한 차례 휴직을 하기도 했습니다.
질문: 뉴스나 잡지 보면 간혹 현지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이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경우를 봅니다. 어떻게 해서 이루어지는지 궁금하거든요.
송영주: 아마 종합일간지에서는 그런 시스템은 별로 활발하지 않은 것 같고, 스포츠지 같은 경우 발랄한 젊은 소식들을 원하기 때문에 그럴 때 통신원으로 쓰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은 제 생각에 공개채용을 하기보다는 알음알음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생각이 있다면 언론사로 이메일을 보내 본인이 어떤 일을 하고 싶고 지금 어떤 경력을 쌓았으며 어떤 기사를 보낼 수 있다고 제안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질문: 처음 기자를 왜 하고 싶으셨는지, 또 그때 당시 생각과 지금 생각하는 기자 생활을 어떻게 말씀하실 수 있는지요.
송영주: ‘기자란 살아서 팔딱팔딱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고 한마디로 요약하고 싶습니다. 저는 기자란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TV드라마나 신문의 멋들어진 글을 보고 나도 이런 멋진 인생을 한번 살아보겠다, 그런 밝은 면만 보고 지망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18년을 보내며, 일에 대한 불만은 없습니다. 일은 보람차고 재미있지만, 희생해야 될 부분도 많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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