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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도쿄 세미나 - 기타카와 후라무 인터뷰

작성일2008-11-06

조회수8795

한국여기자협회는 일본의 공공디자인을 주제로 한 도쿄 세미나(10월23~26일)에서 일본 공공미술의 권위자인 기타카와 후라무(아트프론트갤러리 대표)씨를 만났다. 3시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열띠게 진행된 인터뷰에서 기타카와씨는 다치카와(立川)시 재정비 프로젝트, 다이칸야마(代官山) 인스퍼레이션전(展), 삿포로 월드컵경기장 아트 설계, 시즈오카 아이노(愛野)역 주변 아트설계, 에치고 쓰마리(越後妻有) 아트 트리엔날레 등을 프리젠테이션하고 질의응답을 가졌다. 그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지 않으면 예술과 도시설계는 의미가 없다”는 뚜렷한 예술관을 밝혔다. 다음은 기타카와씨의 프리젠테이션 요약과 일문일답.

 

■파레 다치카와(Faret 立川)

도쿄 인근 다치카와 시(市)가 도쿄 권역의 문화 기능을 강화하는 재정비사업을 추진하면서 1991년 실시한 공모에서 발탁돼 1994년 완성한 사업. 미군기지가 있던 6헥타르 부지에 11동의 건물을 건설하는 계획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구 소련이 붕괴하고 인터넷이 개발되는 등 격동적이고 가치가 다양해지는 세계를 반영하자는 의도에서 ‘미술관의 연장’으로 ‘모셔야 하는’ 미술작품이 아니라 앉고 만질 수 있는 친근한 작품을 다수 도입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세계의 다양한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37개국 90여명의 107개 작품이 모여 모두 살펴보려면 2시간이 걸린다. 마을 전체가 미술관이며 시민들이 스스로 작품을 닦고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설치는 이제 도시계획의 전형적인 모델이 되고 있다. 당시 예산 100억엔이 들었는데 지금은 단 하나에 15억엔이 나가는 작가의 작품(Donaldo Judd)   도 있다.

 

■삿뽀로 월드컵경기장 아트설계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지어진 경기장 중 유일하게 경제성이 확보되고 있는 경기장이다. 계단, 가로등, 유리창 방향에 따라 쓰여진 세계 각국의 도시이름, 보는 위치에 따라 모양이나 색깔이 변하는 작품 등 경기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즐기고 재미있어 하도록 꾸몄다.

 

■시즈오카 월드컵경기장 인근 아이노(愛野) 역

신설된 아이노역에서부터 시즈오카 경기장까지 2㎞를 디자인하는 사업. 역대 월드컵 개최국의 아티스트들에게 제일 자신 있는 것을 내놓으라고 한 결과 재미있는 작품들이 다수 모였다. 이 곳을 방문하는 이들은 역에서 내리자마자 축구장 관람석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작품을 볼 수 있는데 여기서 기념촬영을 하며 즐거워한다.

 

■다이칸야마(代官山) 인스퍼레이션전(展)

다이칸야마는 근대의 건물이 남아있는 주거공간과 사무공간이 섞인 지역이다. 이 곳에서 2년마다 한번씩 거리에 작품을 설치하는 전시회를 갖는다. ‘팔방미인 사용금지’라고 쓰인 코인 라커, 가짜 지하철역 입구 등이 선보였는데 이러한 행사를 통해 주민들이 서로 친근감을 느낀다. 이 지역에서 자신이 입은 옷 색깔을 표시하는 이벤트를 벌였었는데 도쿄의 다른 지역과 달리 검정색이 적다. 컬러풀한 옷을 입고 다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에치고 쓰마리(越後妻有) 아트 트리엔날레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농촌지역을 지키자는 생각에서 지난 10년간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행사다. 760㎢ 넓이에 인구는 3만명에 불과한 니가타현 6개 마을에서 3년마다 열리는 국제 전시회. 프랑스 네덜란드 호주 핀란드 등 세계 각국이 이 행사를 물심 양면으로 지원하며, 이제는 작가와 관람객 등 연 1만5,000여명이 몰려들어 지역경제가 되살아나고 있다. 행사를 시작하기 전 4년 반 동안 지역주민과 의원 등의 반대가 심했지만 2,000회가 넘는 설명회를 통해 설득했다. 2000년 처음 시작해 150점, 2003년 150점, 2006년 200점의 작품이 설치되었고 일부는 철수하고 일부는 남겨 170점이 남아있다. 천수답에 스크린을 세워 논농사과정을 설명한 ‘The Rice Field’는 세계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도시설계에서 무엇을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예술은 재미있고 친근해야 한다. 예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사람들이 함께 돌보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는 것이다. 예술 자체로 아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생각이 달라진다.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는가?

=이 땅의 삶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작가들이 그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삶의 터전의 의미를 발견하고 예술을 통해 그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에치고 쓰마리 아트 트리엔날레 행사를 처음 시작할 때는 도시에나 어울릴법한 작품들이라는 평가가 있었는데 2회째부터는 작가들이 그 지역의 힘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도 처음에는 무척 귀찮아하다가 자기를 재발견해주는 것에 기뻐하고 있다.

 

-사업을 추진하는 관료나 지역의 주민들로부터 숱한 반대를 겪으면서 작업해왔는데 이러한 반발을 어떻게 해소하는가?

=평소 친근하지 않던 것이 갑자기 들어오면 반발하는 것이 당연하다. 에치고 쓰마리 아트 트리엔날레는 시작하기까지 4년반이 걸렸다. 설명회를 2,000번 넘게 했다. 주민들에게 많이 돌아보게 하고 즐거운 미술을 경험하게 하니까 사람들이 바뀌더라. 구체적인 예를 들면 에치고 쓰마리 아트 트리엔날레에서 논에 작품을 세우겠다고 하자 논 주인인 농민의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작가가 농민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50일만 설치해 두겠다고 설득했다. 그렇게 하다보면 주민들도 태도가 바뀐다. 좋은 작품이 없어지면 오히려 심심해한다. 파레 다치카와 사업을 벌일 때도 처음에는 반대가 많았다. 작품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이제는 치우면 심심해한다. 일단은 작품을 세워 1,2년만 둬보자고 하고, 정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철수시킨다.

 

-도시 재개발을 관리하는 공무원의 디자인에 대한 의식은 어떤가?

=정말 망하기 직전일 정도로 안 좋다. 오사카의 새 지사는 “예술은 필요없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데 실제로 오사카 어린이도서관이 없어지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능력이나 비전이 떨어진다. 하지만 서로 이해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만 사업을 추진하면 안 된다. 반대가 있어야 시민의식도 생긴다. 예술을 계기로 시민의식을 배양할 수 있다. 결국 공무원의 예술적 의식은 형편 없지만 시민과 연계해서 끈기 있게 추진하는 길밖에 없다. 예술이란 그 저변에 면면히 흐르는 생활과 삶과 시간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그것에 공감하는 이들과 연대해서 일하는 것이 내가 지향하는 바이다.

 

-롯폰기힐스나 미드타운처럼 부동산개발업체들이 도쿄 도심의 재개발을 주도하고 있는데 그 배경은 무엇이며, 여기에서 일본적 정체성이 포함돼 있다고 평가하나?

=그러한 재개발은 상업적으로 이득이 된다는 판단으로 실시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더 그럴듯한 것이 나오면 곧 없애고 만다는 것이다. 롯폰기힐스도 투자한 만큼 수익을 회수하고 나면 헐어버릴지도 모른다. 이미 위험한 상태라고 본다. 거리를 조성할 때는 장기적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반면 다이칸야마는 장기적으로 유지가 가능한 곳이다. 이런 것이 바람직한 모델이다. 다이칸야마는 에도풍의 전통적인 마을 커뮤니티를 유지하고 있는 지역이다. 초등학교 친구들처럼 서로 얼굴을 알고 친하게 지내는 정도의 커뮤니티를 뜻하며, 가령 지진이 일어나 고립된 상황에서도 서로 도우면서 마을을 지킬만한 연대감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다이칸야마 어번 빌리지’라고 부른다. 현재의 도시생활은 이러한 커뮤니티가 반영되지 않고 있는데, 이런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예술이 필요하다. 사람들을 연결하지 않는 예술이나 도시계획은 의미가 없다. 어떤 도시가 되든지 공동체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한국에서도 시나 도 등 관 주도의 공공디자인사업이 많이 추진되고 있다. 성공을 위해 어디에 역점을 두는 것이 좋을지 조언을 한다면.

=한국의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기가 어렵다. 단 지역 사람들의 의사를 최대한 수렴하고 지역적 특성이 돋보이도록 부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문화사업은 월드컵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공동체를 무시하고 획일화해서는 안 된다. 미술을 통해 본 세계는 다양해야 한다. 또한 수도가 아닌 지역에서 사업을 추진할 경우 지역의 작가, 또는 국내 작가를 발굴하는 것에 치우치기 쉬운데 그것도 중요하지만 세계적 수준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작품의 질이 떨어지면 자칫 조각공원이 되고 만다. 세계의 미술과 연결되고 함께 호흡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 

=일을 하다 보면 어떤 때는 책상을 발로 찰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아주 기분이 좋다. 에치고 쓰마리 행사가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지역의 노인들이 살아생전 자식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못 볼 줄 알았는데 예술행사를 통해 젊은이들이 몰려오면서 감격해 하는 것을 보고 나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이야기해보겠다. 미국 미니애폴리스에 20차선 도로를 가로지르는 육교가 있다. 이 도시설계의 치명적 결함이 넓은 도로 때문에 남북으로 나뉘어져 생활권이 분리되고 갈등이 생긴 것이었다. 한 작가가 두 사람이 겨우 지날까말까 한 육교를 만들자고 아이디어를 냈는데 “그런 것에 왜 허튼 돈을 쓰냐”며 격론이 벌어졌다. 하지만 육교가 만들어진 후 도시계획은 순조로워졌다. 좁은 통로에서 일 대 일로 만난 사람들은 서로 인사도 하고 서로 친해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것이 예술의 작용이다.

 

(사진출처 : 중앙일보 중앙SUNDAY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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