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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정기 세미나 - 풀이
작성일2006-01-06
조회수6070
2005 한국여기자협회 정기 세미나
-일시: 10월 21~22일
-장소: 제주도 서귀포시 KAL호텔 대회의장
<1부: 언론 보도에 따른 명예훼손과 대처방안>
-강사 : 언론중재위원회 교육홍보팀 박재선 변호사
-토론자: 동아일보 김진경 차장, 스포츠투데이 정숙 기자, SBS 권애리 기자
-사회자: 김영미 한국여기자협회 부회장(연합뉴스)
사회자 : 언론보도에 따른 명예훼손과 대처방안에 대해서는 언론중재위원회에 계신 변호사님께서 구체적인 말씀을 해주시겠습니다. 박재선 변호사님께서 자리해 주셨습니다.
박재선 변호사 : 강연의 주제는 ‘언론보도에 따른 명예훼손과 대처방안’ 입니다. 이런 분쟁이 ‘왜 생기느냐’ 하면 언론사는 언론의 자유, 즉 보도의 자유를 주장할 테고, 그러면서 다른 개인의 인격권이 침해되겠죠. 그러면서 언론의 자유와 인격권이 충돌하게 되는 그런 현상이 이제 언론보도에 따른 분쟁의 형태가 됩니다. 법적으로 말하자면 즉 언론의 자유와 인격권의 충돌 문제겠죠. 그러면 ‘대처방안이 어떤 거냐’고 하면, 법리로 가서 여러 가지 판례와 사례를 통해서 어떤 경우에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는지 그것을 통해서 대처방안을 꾸며 보았습니다.
81년도에 지금의 중재위원회가 생겼는데, 그 이후 2004년까지 조정신청 접수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언론 통폐합이 풀리고 언론 매체도 늘었고, 참여 정부 들어서는 정부가 많이 신청을 하고 있어요. 그 다음에 또 국민들도 권리 의식이 많이 함양이 되어서 예전에는 ‘언론사를 상대로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하겠다’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요즘에는 상담이 많이 오고 있죠. 작년에는 752건이었고 점차 늘어가고 있고요. 2002년에 왜 500건밖에 되지 않는지 이유를 혹시 아세요? 예. 월드컵 때문에 사람들이 거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언론에서도 축구 이야기를 하고, 붉은 악마를 하니 중재위원회도 대한민국도 천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희가 구성해 본 것을 본격적으로 들어가자면, 처음에는 언론보도로 인해서 어떤 인격권이 침해가 되고 있는지 보니까 명예훼손에서부터 해서 사생활 침해, 특히 이것을 질문 많이 하셨는데…, 이런 것을 살펴보겠고요.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지 권리 침해를 예방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두 번째로 인격권이 침해됐을 때, 우리나라 법제 하에서는 어떤 식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지 살펴보겠고요. 세 번째는 중재위원회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언론보도의 인격침해와 권리 침해 예방으로, 언론보도에 의해 침해된 인격권, 주로 많이 침해가 되고 있는 인격권이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명예훼손. 소송에서 가장 많이 판례가 쌓여있죠.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언론전담재판부라고 있거든요, 25부 26부. 거기서 대부분 8~90%는 명예훼손 소송입니다. 그 다음에 이제 나머지 초상권 침해, 음성권, 사생활 등…. 의미는 모두 아시겠죠?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람들의 객관적 평가라 해서, ‘이번 여기자협회 세미나에서 박재선 변호사가 강의를 모두 틀리게 했다’ 이런 보도라든지, 게시판에 글이 올라간다면, 어떻습니까? 박재선 변호사가 사람들에게 받는 객관적 평가가 떨어지게 되겠죠. 그래서 그 평가가 저하되면 ‘명예훼손’이 되는 겁니다. 그 다음에 여기자협회 강연에서 ‘이화순 차장님이 졸았다’라는 멘트가 게시되면 어떻습니까? 이화순 차장님이 가지고 계신 사회적 객관적 평가가 떨어지는 거죠. 저하된다, 그러면 명예훼손이 되는 거죠. 초상권은 그 사람의 얼굴이라든지…. ‘개똥녀 사건’을 생각하시면 되요. 물론 잘못하긴 했지만 지하철에서 강아지의 변을 그렇게 하는 모습을 찍어서 올린다, 블로그라든지 홈피라든지 하는 곳에 그 사람의 동의를 받지 않고, 그러면 초상권 침해가 되겠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초상, 즉 자기 얼굴이나 특징이나 식별할 수 있는 신체적 특징이 개똥녀에게 있는데, 그 분에게 동의 받지 않고 올린다면 초상권 침해가 되겠죠. 그 다음 음성권, 즉 ‘말’에 대한 권리입니다. 이번에 그 이상호 기자 X파일 사건 생각하시면 되죠. 안기부 도청사건말입니다. 그 사람의 ‘말’에 대한 권리, 즉 언론사 간부와 대기업 간부가 갖고 있는 그것을 침해한 것이죠. 그 다음 성명권, 이름에 대한 권리. 이것도 소송은 거의 안 걸리는데, 이번에 중재위원회에서 최초의 직권조정결정이 100만원짜리 나간 것이 있거든요. 언론중재법 사상 최초에요. 최초이자 마지막인데요, 부산 중재부에서 기업신문을 상대로 해서 받아냈는데, 바로 성명권 침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라이버시 침해. 정형근 위원의 호텔방 사건 생각하시면 됩니다. 의원이 호텔방에서 뇌물을 받았다, 이런 건 공공성이 있어서 괜찮은데 만약에 거기서 그냥 유부녀랑 들어갔다가 나왔다, 이런 건 프라이버시 침해가 되죠. 이 다섯 가지에 대해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강의 동영상)
그래서 차관이 땅 투기를 했다, 이러한 보도인데 명예훼손이 되는 거죠. 차관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게 되는 거죠. 품성이라든가 덕행이 손상되는 거니까. 명예훼손입니다. 그런데 이게 이제 잘못된 보도라고 해서 정정보도가 나왔다고 하죠. 이게 잘못된 보도다, 왜 잘못된 보도냐 하면 차관이 땅 투기한 게 아니라 부인이 장인어른한테 상속받아서 한 것이기 때문에 적합하다, 이런 식으로 정정보도가 나갔어요. 원래의 보도는 그런데 명예훼손이죠. 그런데 만약에 이게 잘못된 보도가 아니라, 즉 상속받은 게 아니라 땅 투기를 했다고 그러면 명예훼손이긴 하지만 SBS는 책임을 안집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게, 이 보도가 잘못된 보도라 해서 문제지만 원 보도 내용이 진실한 것이라고 한다면, 즉 땅 투기를 했다면 이 사람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떨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SBS는 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죠. 그러나 SBS가 책임을 안지는 경우가 있는데 어떤 경우냐면 이것을 갖추었으면 명예훼손을 하더라도 책임을 안집니다. 공공성과 진실성을 갖추었을 경우죠. 우리 정부 차관이 어떤 행태를 보이냐, 그런 것을 알 권리가 있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공공성이 있는 보도죠. 그리고 만약에 땅 투기가 맞다, 진실한 보도다 라고 한다면, 이 두 요건이 갖추어진다면 명예훼손이더라도 위법성이 소멸하게 됩니다. 따라서 여러분들 입장에선 명예훼손, 이 부분 보다는 이쪽에 더 초점을 두셔야죠. 오늘 알고 가셔야 할 부분은 공공성과 진실성, 혹은 공공성과 상당성 부분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명예훼손 부분에 들어가서 피해자 입장에서는 어떤 때 명예훼손 소송을 할 수 있는지, 성립요건이 필요한데 우선 피해자 추정이 돼야하죠. 알아보죠. 그럼 여러분들 입장에서는 거꾸로 말하자면 피해자 추정이 안 되면 명예훼손이 안 된단 거죠. 그러니까 아무리 보도 내용이 사회적 평가를 저해한다고 해도 피해자 추정이 안 되면 명예훼손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되죠. 그 X파일 사건에서도 방영금지가처분 판결나고, 인용판결 나고, KBS에서 언론사고위간부, 대기업고위간부, 이렇게 나왔거든요. 실명으로 안 나오고. 그게 왜 그렇게 되었냐면 그 변호사들이 피해자 추정을 시키지 말라, 이렇게 해서 그런 거거든요. 그러니까 내용은 명예훼손이지만 누군지 모르게 해서 명예훼손이 안 된다는 것이죠. 그러면 본론으로 돌아가서, 실명 보도를 하면 당연히 피해자 추정이 되겠구요. 익명처리를 하고 있죠. 언론에선 피해자 추정이 안 되려구. (시청각 자료 보여주며) 이건 스포츠 신문이었고, 이건 MBC 방송이었는데, 진희경씨였거든요. 실명 보도를 안했는데, 피해자 추정이 된다고 봤어요. 90년대였는데, 진 모양이 호텔에서 손님을 접대했다 이런 식으로 보도가 나온 거죠. 그래서 그 사람의 덕행, 명성 이런 걸 떨어뜨리는 건 다 명예훼손이 되는거죠. 우리가 익명처리를 했기 때문에 책임 못 진다 라고, 피해자 추정이 안됐다고 이제 얘기를 하는데, 우리 법원의 입장은 이거에요. 보도 내용과 주위 사정을 조합해 봤을 때 독자나 시청자들이 누군지 알 수 있다, 그러면 실명 보도를 안했더라도 피해자 추정이 가능한거죠. 그래서 이것도 처음 나오고, 모델 나오고, 연예인도 했고 모델도 했고 그 당시 26세. 그러면 진 누구누구라는 걸 알 수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것도 책임을 졌죠. (또 다른 시청각 자료 보며)그 담에 이거는 MBC였는데 피해자가 언론이었어요. 그 분이 음주운전을 하고 가다가 걸린 거예요. 근데 그때 마침 MBC 카메라 출동이 와서 취재를 하고 있었는데 촬영을 갔죠. 그런데 이분이 취재 거부를 해서 다음날 보도가 나왔는데 모자이크를 해 줬어요. 모자이크 처리 하고 누군지 모르게 하면 피해자 추정이 안 되는데 이 사건은 왜 피해자 추정이 인정됐냐면 일단 자막처리를 ‘모 방송사 기자’ 이렇게 해 놓고 모자이크 처리는 했지만 음성이 변조가 안됐던 거죠. 그런데다가 이 분이 뉴스 앵커 경력이 있는 중견 방송인이었어요. 그러니까 목소리가 유명한 사람이죠. 그래서 모자이크 처리는 됐지만 음성변조는 안돼서 피해자 추정이 인정됐던 사건이죠. 그래도 이건 피해자 추정이 됐지만 MBC가 이겼어요. 왜 그러느냐. 공공성과 진실성이 있었거든요. 왜냐면 언론인의 어떤 사회적 활동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거죠. 여러분도 조심하셔야 돼요.
두 번째는 구체적 사실의 적시입니다. 피해자가 먼저 추정이 돼야 되고, 자신의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있는 구체적 사실의 적시가 있으면 명예훼손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럼 한마디로 여러분 입장에서 바꿔 말하면, 의견 표명의 경우에요, 의견 표명의 경우에는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언론인이. 사실의 적시 부분만 명예훼손이 되느냐 이게 공공성과 진실성을 갖췄나 이것을 사실 적시부에서 하고, 의견 표명은 기자의 언론의 자유의 핵심 영역으로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다른 시청각자료 보며)이건 조선일보였는데, 검찰에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는데 의견 표명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한 경우죠. 이 사실의 적시 부분은 검찰이 영장 없이 계좌를 추적했다, 라는 사실이죠. 구체적 사실의 적시죠. 그리고 금융실명보안법상 영장이 있어야 되는데 없이 했다, 이것은 검찰의 명예가 훼손되는 부분이에요. 피해자 추정 되죠. 그 다음에 사회적 평가가 저하되는 구체적 사실의 적시가 있죠. 그러나 이것도 조선일보가 이겼어요. 왜 그러냐. 공공성과 진실성을 갖추었기 때문에. 검찰의 업무의 적법성. 이것은 언론인이 감시하고 비판해 줘야 하죠. 그래서 공공성이 있고, 그리고 이게 진실성도 갖췄습니다.
의견표명에 대해 좀 더 보시면 의견표명은 원칙적으로 자유롭다, 이렇게 말씀드렸는데 사실의 적시 부분은 명예훼손, 의견 표명은 자유롭다, 그러나 한계는 있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자유로워요. 이게 이제 조정신청이 된 건데, 작년도 노무현 대통령이 언론정책에 대해 비판한 건데, 국정홍보처에서 불필요한 적대관계다 라고 해서 조정신청을 했어요. 명예신청이라고 했는데 결국 결론은 기각이거든요. 왜 기각이냐면 이건 사회적 평가는 저하되는데 구체적 사실의 적시가 아니에요. 기자의 의견표명이기 때문에 대상이 아니다, 라고 해서 기각이 되었어요. 원칙적으로 사실(fact)만 정확하다면, 의견 표명은 자유롭다고 할 수 있죠.
(강의 동영상)
예. 지금 이 앵커 멘트 중 어떤 부분이 손해배상에 해당되었느냐 하면요, ‘한심하다 못해 분통이 터진다’는 얘기와, 청렴한 순백의 법조인에 비해 ‘사람답지 못한 사람’으로 지칭한, 이 두 멘트가 있었어요. 이 멘트 때문에 MBC 와 앵커맨이 3000만원의 배상을 했죠. ‘분통이 터진다’ 이런 표현은 좀 한도를 넘었다고 본거죠. 방송 매체이다 보니까. 또 앵커맨이 원고대로 읽지 않았어요. 앵커맨이 즉흥적으로 주관적 표현을 한 것 같아요. 그런데 또 (나눠준 자료집의)13페이지 보시면, <오마이뉴스>에 더 심한 사건이 있거든요. 더 심한 용어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항소심에서 이겼어요. 1심에서는 졌는데. 오마이뉴스가. 그러니까 일률적인 게 아니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보는 거죠. 이 사건의 경우 지만원씨가 이런 것을 유도했다, 5.18 관련 광주 시민들을 모욕하는 광고를 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오마이뉴스가 비판하는 글을 썼거든요. 그러므로 원고가 수인해야 할 범위다, 이런 식으로 된 거죠. 이건 최근에 인신공격으로 보지 않은 사건이죠.
(동영상 변호사 관련) 그 변호사는 변호를 잘못했어요. 뒤에 변호사가 이길 사건을 불성실하게 소송 수행을 했어요. 이길 사건을 지게 만든 거죠. 그런 보도가 나오는데 기자는 면책이 되었어요. 명예훼손이지만 공공성과 진실성을 갖춘 보도거든요.
그래서 방금 말씀하셨지만 MBC는 왜 책임을 지냐면, 자신들이 공표한 내용에 대해서는 다 책임을 져야 하는 거거든요. 언론사는 인용 보도한 거라도 전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 대신 기자는 면책이 되죠. 명예훼손이지만 공공성과 진실성을 갖춘 거니까.
그러면 진실성을 갖추지 못한 보도도 있을 수 있는 거거든요. 나중에 오보로 밝혀지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경우에도 언론인이 면책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상당성이에요. 상당성이란 뭐냐,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필요한 조사와 확인절차를 다 거쳤느냐, 그런 객관적이고 타당한 취재원을 확보하고, 당사자를 만나보고 대립된 이해관계가 있으면 양쪽을 다 만나보았느냐, 중립적이냐 그런 것들, 열심히 노력을 했느냐 이런 것들을 봐서 오보로 밝혀지더라도 면책될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습니다. 이런 게 상당성이죠.
(자료집)15페이지를 보면 공공성 같은 건 소송 가시면 거의 다 인정이 되요. 페이지 (예시자료를) 보시면 PD의 역사관 정도로 비판하는 것은 공공성이 있다고 하는 판결이 있었어요. 진실성을 입증 못해서 KBS PD가 이긴 사건이에요. 세 번째 동그라미 된 사건은 아까 그 음주운전 관련 사건인데요, 언론인의 사회적 활동에 대한 비판은 해줘야 한다는 내용이죠. 여러분의 행동은 공공성을 갖고 있다는 거죠.
공공성과 관련된 판례 하나 보시면, 사회부 기자들이 조심해야 하는 건데, 타인의 범죄 행위 보도 시에는 익명 처리를 해줘야 된다는 것이 원칙이에요. 90년대 판례인데, 이혼 소송 중인 30대 주부가 제 3자를 시켜서 남편과 남편 친구를 폭행을 했다, 이걸 보도를 해도 되는데 문제는 신원을 공개했다는 거죠. 여기 이름 나오고, 주소, 직업 의류 판매상 이런 식으로 나오기 때문에 이 분이 무죄 판결을 받아서 소송을 낸 거예요. 언론사가 패소를 했던 그런 사건인데, 15페이지 마지막 판례 보시면 나와 있어요. 일반 국민들이 범인이나 범죄 혐의자에 대한 신원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범죄 사건 보도는 공공성이 있어요. 그러나 그 범죄 사건을 누가 했는지, 범인이나 범죄 혐의자는 알려서는 안 된다 라는 게 법원의 원칙이죠. 이 사람이 확정판결 났어도, 유죄판결 났어도 원칙적으로 실명보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게 법원의 입장입니다. 그런데 예외는 있죠.
(강의 동영상)
예, 이 보도의 경우 공인의 경우 실명보도가 가능하고, 그러더라도 공공성은 인정된다는 거죠. 문제는 오시덕 의원이 이런 혐의로 검찰이 소환 받은 바가 없다는 거죠. 공공성은 인정되나 진실성, 상당성이 관건이 되는 거죠. 진실한 보도가 아니라면 정정보도라든지. 나중에 정정보도가 나갔어요. 공인의 경우 실명보도가 인정은 된다는 것이고. 그렇다고 공인의 경우 항상 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요.
24페이지 보시면 언론 관련된 판례가 많이 없거든요. 공인으로 인정된 경우가 있고요. 인정되지 않은 경우도 몇 가지 있고요.
다음에 이제 상당성인데요. 이건 이제 유해식품 보도거든요. 크게 문제가 됐던 건데, 작년의 쓰레기 만두 사건과 비슷한 거예요. 골뱅이 번데기 통조림에 방부제가 섞였다는 거죠. 이런 보도가 나왔는데, 여러 언론사가 다 얘기를 했어요. 그러고 나서 이 대표들이 대법원까지 가서 무죄판결을 받아서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어요. 결론은 언론사가 이겼습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이게 허위보도로, 오보로 밝혀지더라도 기자들에게는 이걸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인정된다는 거죠. 사실 이걸 부장검사실에서 기자들이 공식 브리핑을 받았고 보도 자료를 받았어요. 그걸 보고 취재를 해서 보도를 했기 때문에 상당한 근거가 있다는 거죠. 이 회사는 억울한 게, 몇 년 동안 해서 망했다는 거죠. 경제부 기자들은 조심을 하셔야죠. 만두 사건에서 식약청 보도도 얘기하는 게, 열 곳 중 다섯 곳이 혐의가 있다고 하면 나머지 다섯 곳도 피해를 보는 거예요. 기업 보도가 그게 치명적이죠. 나중에 언론에서도 PR 보도를 많이 해줬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공식 발표에 기한 것이라 상당성을 인정받았고요.
(강의 동영상)
여기 보면 3명의 국회의원이 나오는데요, 모자이크와 음성변조는 저희가 한 거고 실명으로 나왔어요. 얼굴도 나왔는데, 세 명이 중재 신청을 했는데 SBS가 합의를 안 해 줬거든요. 그럼 불성립이 되는 거죠. 그 중에서 윤철상 의원이 소송을 제기했어요. 결정적인 건 뭐냐면 남경필 박종희 의원 같은 경우에는 기자를 만났어요. 뒤에 인터뷰도 나오거든요. 뒤에 자기 반론과 인터뷰가 나오기 때문에 소송은 제기 안했어요. 그러니까 얼마나 기자분이 반론을 실어주느냐, 만나봤느냐 이게 중요한 게, 소송 제기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이죠. 윤철상 의원은 얼굴 나왔는데 안 만났나 봐요. 그래서 상당성이 부족해서 SBS가 져서 5000만원의 배상판결과, 정정보도를 받았죠. 상당성은 중요한건, 당사자를 만나는 게 가장 중요해요. 공공기관의 공식 발표가 없는 경우에는 기자가 얼마나 노력을 다했느냐가 중요한데 이건 당사자를 안 만났으니…. 검찰 관계자도 안 만났기 때문에 상당성 부족, 그래서 SBS가 패소한 경우죠.
(다른 예시자료)이건 이제 상당성이 인정됐던 경우인데요. 4월 1일 KTX가 전면 운행하는데 2월 21일자 보도에서 지금 우리가 실습 경험이 부족하고 교통 신호 시스템이 아직 불안정하다 이런 식으로 비판을 썼는데, 이걸 철도청이 이 신문사를 상대로 소송을 했어요. 언론사가 이겼어요. 왜 이겼냐면 상당성을 인정받았는데요, 상황이 홍보팀에서 기자를 못 만나게 하는 그런 상태에서 KTX 기술 이전을 해 준 관계자를 만나봤고 KTX 제조업체들 만나봤고, 시운전 해 본 기술자를 만나봤기 때문에 이 정도로 하면 신뢰도가 높은 취재원을 대상으로 기자가 노력을 다했다고 보는 거죠. 상황상으로도 신속한 보도가 요구되는 경우였고요.
옛날에 ‘카메라 출동’ 같은 경우에도 당사자 다 만나봤거든요. 그런데도 MBC가 진 경우가 있었어요. 제보를 받고, 이해 관계가 대립되는 그런 사건이었는데, 그랬을 때 오랫동안 취재가 가능하다고 보거든요. 신속한 보도가 요구되지 않는 보도였기 때문에 정확성이 더 요구되죠. 엄격한 것 같아요. 그건 MBC가 졌던 경우고, 법원 가면 상당성이 문제가 되죠. 진실한 보도를 하면 소송이 제기될 여지도 별로 없어요. 이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죠. 얼마나 노력을 다했는가. 여러분의 취재 수첩이나 보도자료, 이런 걸 오래 보관을 하셔야죠. 아까 포르말린 사건 같은 경우에도 민,형사 판결에 5년이 걸렸거든요. 기자분들 같은 경우에 취재 수첩을 잘 잃어버리셔서, 그걸 변호사가 입증을 못하면 지는 거예요. 언론사가 이중 책임을 져요. 명예훼손이라는 것만 원고가 입증을 하면 그 다음에는 원고가 허위보도다 이런 거 입증할 필요 없이 그 다음에 이중책임이 언론사에게 가거든요. 입증자료를 못 내면 패소하는 거구요. 그때도 검사가 만든 보도 자료를 잃어버렸었는데 한 방송사 기자가 찾아냈어요. 그래서 10개 이상의 방송사와 일간지가 한꺼번에 이긴 사건이 있었어요. 그 변호사는 (취재수첩은)5년 동안 보관해라, 요새 얘길 하고 있는데, 힘든 거죠. 그래도 중요한 사건은 오래 보관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이것은 범죄보도에서의 단정묘사에요. 범죄 보도 시에 긴급체포 됐다, 대마초 혐의 이런 건 문제가 없는데, 제목 뽑을 때 단정적으로 써 버리면 명예훼손이 되는 거죠. 지금 긴급체포된 상태죠. 확정판결 나지 않고 지금 기소도 안 된 상태에서 ‘대마초 적발’ 이렇게 써 버리면 현행범으로 체포된 걸로 오인하거나 확정판결 난 것처럼 독자들은 그렇게 오인할 수가 있죠. 법원에서 요구하는 것은 혐의 받고 있으면 혐의, 이렇게 써 달라는 것이죠. 기소가 됐다 그러면 기소, 이런 식으로 무색투명하게 써 달라는 거죠.
SBS가 승소한 주병진씨 강간치사 사건에서, 이것도 일종의 범죄보도인데, 연예인이니까 얼굴 다 나가고 실명 다 나가고 그랬는데, 이건 공공성이 있어요. 이런 범죄 보도 같은 경우는…. 여성 잡지와 SBS ‘한밤의 TV연예’ 이런 데 나왔는데 보도 내용이 주병진씨 강간 치사 혐의에 대해서 “지금 혐의를 받고 있다”, 이런 식으로만 보도를 했어요. 마치 이 사람이 진짜 강간 치사를 한 것 같이 하지 않았어요. 주병진씨 측근 얘기도 들어보고 피해자 측 얘기도 들어보고, 지금 어떤 혐의를 받고 있는지 이렇게만 했지 단정적으로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여성지들 경우에는 주병진씨 안 만났죠. 피해자 측 얘기만 듣고 단정적으로 강간한 것처럼 썼기 때문에 아마 잡지들은 거의 패소했을 거예요. 이런 식으로 해서 범죄 보도는 단정적인 부분은 좀 피하시라는 것이고, 방송 같은 경우 모자이크 이런 것만 잘하시면 되죠.
명예훼손에 대해서 살펴봤는데 여러분들 다른 거 다 잊어버리셔도, 공공성과 진실성 또는 공공성과 상당성 이것만 알아두시면 됩니다.
다음에 초상권 침해를 보시겠습니다.
(강의 동영상)
이 사건 보시면 아시겠죠. 동의 받지 않고 사진을 촬영했기 때문에 이 피해자 부부의 초상권이 침해된 거죠. 게다가 이 분은 증권 투자도 하지 않는 분이었어요. 전혀 관련 없는 기사에 이용했기 때문에 신용이 떨어진 거거든요. 그러니까 명예훼손도 돼요. 그래서 승낙을 받아야 된다는 것이고. 22페이지 보시면 가장 유명한 판례가 있어요. 뉴스위크사 이화여자대학교 사례인데, 동의 받지 않고 여대생들 사진을 찍어서 “돈의 노예”라고 기사를 써서 명예훼손과 초상권 침해로 소송 제기 했던 사건이죠. 3000만원 정도 손해배상 판결이 나왔어요. 이분들은 졸업사진을 찍느라 간 거였는데 이렇게 기사가 나왔네요.
승낙을 받아야 되고, 그리고 승낙범위 내에서 사용해야 합니다. 다른 용도로 사용하셔도 초상권 침해가 됩니다. MBC 미디어 비평에 좋은 사례가 많은데, 이건 방송사가 침해한 사례입니다. KBS PD였는데, 짝퉁 동호회를 운영하는 데 가서 “여기를 이색 동호회로 소개 시켜주겠다”고 했어요. “짝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고 긍정적으로 대답이 나왔는데, 보도로 나가는 것을 보니까 ‘짝퉁이 만연한 실태’를 보도하고 고발을 한 거에요. ‘생각 없이 사는 대학생의 모습’, 이런 식으로 멘트가 나오고, 불법이라고 나오고 했던 거죠.
(강의 동영상)
이것도 승낙은 받았지만 승낙 범위 내에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사용하겠다고 하고 부정적으로 사용했죠. 이 방송이 나간 다음에 KBS가 다시 MBC에게 소송을 제기했어요. 왜냐하면 ‘KBS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거죠. MBC가 이겼습니다. 명예훼손이지만 공공성과 진실성을 갖춘 보도죠. 명예훼손이지만 위법성 조각 사유가 있어서 MBC가 승소했습니다. 이런 경우는 종종 있는 듯 해요.
(자료집)23페이지 위에 보시면 MBC PD가 침해한 사례인데, 발랄한 신입생 환영회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하고서는 나중에 보니까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서 대학생들의 음주 행태를 보도한 거죠.
그 다음, 공인의 초상 사용은 승낙 받지 않아도 언론보도에 관련해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거죠. 박주영씨, 박찬호씨…, 그리고 정치인들의 뉴스는 매일 나오죠. 그 대신 박찬호씨를 CF에 이용한다 그러면 기업에서 동의 받고, 대가를 지불해야 되죠. 그건 초상영리권이라고 해요. 상업적 권리. 그러나 여러분은 언론인이니까 언론 관련해서라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판례가 없는 경우지만 데모 행렬, 시위 행렬, 관중석, 졸업 사진 같은 경우에는 동의 받지 않고도 찍을 수 있다는 것이 학계의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 사생활의 비밀인데요, 이것도 승낙을 받거나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 이 두 가지가 중요한 면책 사유입니다. 예전 유명한 여성 앵커맨 사건이 있는데 이혼 배경에 악성 루머가 떠돌고 있었을 때 하이텔에서 그 소문에 대해 쓴 사람이 있었죠. 이걸 스포츠신문 기자분이 소문을 쓰고 인터뷰 내용을 썼어요. 그랬더니 이 분이 소송을 제기했어요. PC통신에 올린 분을 형사고소 하고, 기자 분에 대해선 민사소송을 제기했는데, 한마디로 명예훼손, 프라이버시 침해, 이 두 가지에 걸린 거죠. 원고가 완전히 승소를 했어요. 1억원과 법정 위자료를 받았죠. 명예훼손은 되죠. 공공성이 있느냐, 이것도 문제인데, 아무리 공인이라도 사생활까지 공공성이 있느냐는 거고, 공공성이 있다 하더라도 진실성에서 문제가 되는 거죠. 사생활 프라이버시권 침해에 대해서는 언론사측 변호사가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를 들었거든요. 그런데 사생활과 관련해서 30페이지 보시면 맨 위에 판례가 이 보도 사건인데요, 정치인이나 유명인 등 공인에 있어서는 정보가 타인에 비해 폭넓게 공지되어야 하는 것이나 공공의 인사에게도 포기할 수 없는 사생활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원칙적으로 사생활을 보호해 줘야 하는 것이고, 그 중에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는 공개가 가능하다. 즉 가족관계 같은 경우에는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로 볼 수 있으나 남녀간의 성적교섭과 같은 인간자유의 최종영역, 불가침영역에 관해서는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이것이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의 한계죠. 원칙적으로 가면 승낙을 받아야 된다는 거죠.
어쨌든 기자 분은 승낙을 받았다고 주장을 했지만 입증을 못하면 패소하는 거죠. 녹취한 것도 증거로 많이 내고 그렇게 하죠. 전화에 응대했다, 대화를 나누었다, 이건 인정을 했나 봐요. 그렇지만 승낙을 했다는데 대해서는 입증이 없어서 패소를 했어요.
그리고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에 대해서는 판례가 별로 없어요. 결혼 사건 같은 경우 판례가 있고요. 생각해보면 이혼했다던가, 아들을 출산했다든가, 해외여행을 갔다든가 이 정도는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라고 볼 수 있죠. 승낙 받지 않고도 가능한…. 그렇지만 출생의 비밀을 알린다든지 하는 것은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라고 보기 힘든 것 같아요.
이것도 단서가 하나 있는데, 진실성을 요한다는 거에요. 인기가수 결혼사건 중 신해철씨 결혼사건이었는데요, 스포츠지에 “신해철씨 9살 연하 여자친구와 올봄 화촉”, 이런 기사가 나왔어요. 그런데 신해철씨랑 여자친구가 소송을 제기했어요. “그 전에 케이블 방송 같은데서 사귀고 있다고 인터뷰를 한 것은 맞다, 그러나 아직 결혼 계획은 없다”는 거에요. 그런데 예측성 기사를 쓴 것 같아요. 신해철씨가 이겼어요. 신해철씨는 1000만원, 여자친구는 2000만원 받았는데요, 결혼 사건이기 때문에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는 맞죠. 그러나 진실한 보도는 아니라는 거죠. 올봄 화촉을 올린다는 계획이 없다, 오보다 해서 사생활 침해가 돼서 신해철씨에게 1000만원을 물어라, 라고 났죠. 여자친구는 공인 관련 보시면 아시겠지만 미스코리아 뉴욕 진이었다가 그 다음에는 그냥 사인(私人)이에요. 신해철씨 여자친구일 뿐이죠. 그런데 그것만으로 공인이 될 수 없다고 판결이 난거죠. 그래서 초상권 침해까지 됐어요. 그 다음에 진짜 결혼을 했어요. 하지만 보도 당시를 기준으로 하는 거니까….
그 다음 음성권 침해인데, 방송사에서 주로 문제가 있죠. ‘2580’이나 ‘PD수첩’, ‘그것이 알고 싶다’ 등에서 잠입취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원칙적으로 동의를 받지 않으면 음성권 침해에요. 녹음 자체도 그렇고 재생해서 사용하는 경우, 전부 음성권 침해에요. 음성권 침해인데, 법문이라든지 판례 같은 걸 보면 면책될 수 있는 길이 승낙을 받는다든가, 마약상을 취재한다면 중대한 공익사항의 필요가 있다면 가능하다는 것이 이론이고, 우리나라에 판례가 별로 없지만, 뉘앙스가 공공성이 인정되면 면책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나오고 있고…. 공공성이 중요한 거죠. 대신 기자가 숨기고 들어가서 하는 것은 민사적인 문제인데, 그걸 뛰어넘어서 타인과 제3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도청하는 경우 있죠. 이번에 안기부 도청 사건처럼. 이런 경우는 공공성으로 해결이 안 되고 형사처벌이에요. 타인간의 대화 내용을 도청하는 것은 수사기관도 영장을 발부받아야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안기부도 이번에 그것이 문제가 된 거 아니에요. 언론은 당연한거죠. 그러나 기자가 대화자가 되는 경우, 32페이지 보시면 나와 있거든요. 이 경우에는 해당이 안 되고 그냥 민사적인 음성권 침해고, 소송을 제기 안하면 문제가 안 되고 공익성을 입증할 수 있다면 가능하지만 기자가 대화자가 되는 게 아니라 제3자간의 대화내용을 녹음하는 경우에는 비껴나갈 수가 없는 거죠. 10년 이하의 징역이라고 나와 있죠. 벌금도 없어요. 타인과의 대화를 녹음, 청취한 자라고 나와 있죠. 그렇기 때문에 안기부가…. 그 이유 보세요. 취득한 것을 공개, 누설한 자. 이게 문제가 되는 거죠.
다음에 이제 성명권 침해인데요, 먼지 알레르기까지 없애준다는 청소기 PR 보도가 있어요. 영국 알레르기 재단의 인증마크까지 획득했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사용소감을 넣었거든요. 주부의 실명이랑 주소까지 나오면서 유치원에 다니는 딸이 알레르기가 있어서 써보니 두 달 만에 효과가 있더라, 이런 보도가 나왔어요.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이 주부는 이 청소기를 사용해본 적이 없고, 인터뷰를 한 적도 없는 거였어요. 그냥 기자가 하숙했던 하숙집 아줌마의 인적사항을 가지고 이렇게 쓴 거죠. 그 대신 명예훼손은 아니죠. 사회적 평가가 저해되진 않으니까. 그렇지만 성명권 침해에요. 승낙 받지 않고 성명을 이용했기 때문에 성명권 침해가 되는 거고요. 이때 두 사람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분쟁의 형태는, 인격권이 침해됐을 때는 이런 식으로 손해배상이라든가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거고요. 금전배상에 관한 것이 있어요. 7월 28일부터 시행된 언론중재법에 손해배상청구가 중재위원회에 들어왔거든요. 기업 같은 경우에는 10억, 20억원씩 청구해요. 그러나 조정이라는 게 뭐냐, 합의로 해결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언론사에서 합의를 안 해 주니까 손해배상 안 나가죠. 부산중재부에서는 직권으로 해서 100만원 나간 경우 밖에 없습니다.
다음 정정보도가 있는데…, 보시죠.
(강의 동영상)
예, 지금 MBC 보도가 2002년 12월 24일날 광화문에서 여중생 추모 촛불행사를 했다 이런 보도인데, 기독교청년협회에서 정정보도 요청을 해서 정정보도가 나왔습니다. 사실 확인 결과 여중생 추모 행사가 아니라 성탄예배였던 거예요. 이때 기자 분께서 오인을 하신 거죠. 바로 잡는다, 이런 게 정정보도죠.
그 다음 한고은씨가 옛날에 박준형씨가 아닌 다른 남자를 태우고 가다가 사고가 났다, 이런 보도가 나왔는데, 이때 정정보도 청구를 해서 이 분이 그때 미국에 있었다고 밝혀졌다고 연예신문에 났죠. PR 및 정정으로 나왔어요. 7~8개월 만에 컴백했는데 출연요청이 쇄도하고 그 이유는…, 하는 식으로 나왔죠.
다음은 반론보도 청구인데, 정정보도는 원부분이 잘못되어서 그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는다, 이런 보도지만 이건 그런 게 아니고 그 부분의 어떤 반론이 잘 실어지지 않았다 라고 하면 그 것에 관련된 반론을 좀 실어달라는 거죠. 바로 잡는다 이런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이 이렇게 주장해 왔습니다 라고 나오는 거예요. 정정보도는 허위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이건 허위 부분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 요건만 있으면 거의 인정되는 거고, 법원에 가면 십중팔구 인용되는 것입니다. 반론보도 청구권이라는 게 말이죠. 중재위원회에서도 거의 다 합의가 됩니다. 이건 조선일보 정기간행물이구 이번에 인터넷신문이 새로 들어왔죠. 노무현 대통령이 경선에서, 사실적 주장, 이것도 의견표명은 안 되요. 그래서 칼럼 같은 데서 의견표명을 한 경우 조정신청을 하면 기각이 되겠죠. 자료 폐기했다 라는 보도가 있는데 피해를 받은 자는 노무현 대통령이죠.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 반론보도문이 실렸습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 주장 사실을 이렇게 실어주는 거예요. 자기는 경선 관련 자금을 폐기한 바가 없고 그때 당시 국회의원 신분이 없었기 때문에 정치자금법 위반도 아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노무현 대통령의 주장을 실어주는 것이고. 정정보도라면 본지확인 결과, 뭐 뭐 라고 밝혀져 바로 잡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죠.
그 다음에 추후보도 청구라는 게 있는데 범죄혐의가 있다거나 형사상 조치를 받았다고 보도된 바가 있는데 몇 년 후에 무죄판결이나 무혐의 처분이 됐다고 했을 때 나오는 거죠.
사회자 : 변호사님의 강연 잘 들었습니다. 간단하게 질의응답 시간을 갖겠습니다.
김진경 : 저희 신문에서 저출산 시리즈 관련 사진 촬영을 했는데, ‘자녀도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사진을 쓰면서 “‘부촌’인 대치초등학교”라고 했어요. 이런 경우 어떻게 됩니까?
박재선 변호사 : 오보는 아니고, 의견표명이죠. 이건 문제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김진경 : 전 초상권 때문에 학교 취재시 모든 학부모에게 승낙받아야 한다고 들었거든요. 그러면 서울시립 아동병원 발달지체아 치료센터 취재의 경우는 어떻게 되나요? 제가 사진촬영한 뒤에 일부 부모들에게 동의를 구하긴 했는데, 어떤 장애아 부모가 너무 또렷하게 크게 보도됐다며 소송을 제기해서 300만원 배상을 했거든요.
박재선 변호사 : 원칙은 승낙을 받고 본래 의도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소송 대상에 해당되는 거죠. 승낙을 받았다 하더라도, 또 용도가 정당하더라도 어느 정도 사용 가능한지를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는 거예요..
정숙 : 연예인 사생활 비밀 관련 소송 분쟁이 많은데, 물론 다수 국민의 알권리와는 무관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스타는 공인 아닙니까. 충분히 공공의 관심사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또 최근에는 여성벤처사업가의 이혼전력 보도한 여성주간지가 승소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프라이버시가 침해됐더라도 대중의 관심사로 받아들이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요. 과연 대중이 알고 싶은 ‘공공의 관심사’의 범위는 어디까지로 봐야 하는 거죠?
박재선 변호사 : 심은하의 결혼에 관련해서 보면, 심은하는 공개 가능하지만 남편의 사생활은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이죠. 이혼경력을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 남편이 소송을 걸면 승소할 가능성 높은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정숙 : 고소인이 기사 내용보다 제목이 더 큰 문제가 돼서 소송을 냈는데, 피고인이 언론사가 아닌 기자 한 사람을 대상으로 할 경우 어떻게 되나요?
박재선 변호사 : 피고가 책임이 없을 경우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정숙 : 취재기자에게만 손해배상이 청구될 경우에는 언론사에게 추후 구상을 요구할 수 있나요?
박재선 변호사 : 보통 소송할 경우 언론사와 취재기자 함께 청구합니다. 언론사가 돈을 배상한 뒤 기자가 잘못이 있을 경우 추후 구상 요청을 하는 방식이죠.
권애리 : 라식수술 받은 뒤 병원 잘못으로 시력 크게 상실했다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검사소홀로 동공에 구멍이 있는 것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소송 1심에서 환자가 승소했습니다. 그러나 병원 관계자는 취재를 거부했고요. 병원 위치와 외경 등 전혀 보도하지 못한 상태거든요.
박재선 변호사 : 그 경우 1심은 승소했지만 아직 판결이 확정된 것은 아닌 상황이죠. 그래서 ‘병원이 잘못했다’고 단정적으로 보도하기 힘든 거예요. 공공성은 인정되지만 진실성에서 위험하기 때문에 익명보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또 시급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대법원의 확정판결 뒤에 보도해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진실성이나 (오보일경우) 상당성을 입증하기가 힘들 수 있습니다.
김수미(일반 질문자) : 기자가 상당성이 있다고 본 것은 1심에서 승소를 했기 때문인데, 법원발 1심 기사는 보도해도 되는 건가요?
박재선 변호사 : 1심 판결이 나왔지만 단정적으로 보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확정판결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병원의 반론이 들어가야해요. ‘혐의를 포착’한 것도 혐의가 있다는 뜻이 아니므로 단정적으로 보도할 수 없구요.
김수미 : 실명보도 관련해서 질문 드립니다. ‘살인마 유영철’관련해서요. 체포 전에는 유모씨, 체포 뒤에는 유영철한 다음부터 후속 보도가 나올 때마다 유영철이라고 보도했는데.
박재선 변호사 : 사실상 공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에 해당되죠. 사회인이 범죄를 저질렀거나 혐의를 받는다고 해서 공인으로 볼 수는 없는 거예요. 원칙적으로는 안되는 거죠.
미국의 경우 사회인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고 할 경우 예외적으로 공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공인이 아니더라도 실명보도 가능한 경우는 ‘JSA 장교 살해 용의자 김중사 실명 보도’ 같은 게 있는데, 이런 건 사안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가능하고요.
사회자 : 그러나 희대의 살인마인 유영철의 진술에 의거해서 시신이 발굴되기도 했고, 범인이라는 점, 즉 사실성이 입증된 것 아닌가요?
박재선 변호사 : 원칙적으로는 사인(私人)은 확정판결이 나더라도 실명보도 할 수 없습니다.
윤창수(일반 질문자) : ‘신해철 결혼 보도 관련 1000만원 배상’에 관련된 질문입니다. 소송 내용은 나의 애정활동에 방해가 생긴다는 게 요지였는데요, 나중에 둘이 결혼하지 않았으니, 과도한 소송의 책임은 물을 수 없나요?
박재선 변호사 : 그때 당시에는 결혼 계획이 없었다는 거죠. 추후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박현주(일반 질문자) : ‘기업형 부동산 활개치다’ 보도시 ABC 컨설팅 회사가 있다고 익명보도했는데, 우연하게도 한 회사가 이름이 비슷해서 망할 위기에 놓였다고 하더라고요. 회사에서 광고를 끊고 협박을 해왔습니다. 이런 경우는 어떤 건가요.
박재선 변호사 : ABC는 익명보도를 한 것이고 우연히 이름이 맞아떨어진 것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연예인 보도시 A군 A양 다 무혐의 처리 되거든요.
김현주(일반 질문자) : 골뱅이 통조림 사건의 경우 당사자가 겪은 고통이 너무 크지 않나요? 언론사는 무혐의 처리 받았지만, 치러야할 대가가 너무 컸던 거 같아요. 보도시 신중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자 : 이런 경우 추후 정정보도를 청구하고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있나요?
박재선 변호사 : 언론중재위가 손해배상까지 같이 할 수 있도록 예정이에요.
사회자 : 냉정한 정의감이 무엇보다 필요한 케이스가 아닐까 싶네요.
<2부: 여기자의 성공적인 커리어 관리 Ⅰ>
-강사 : 이은형 국민대 교수(전 경향신문 기자)
사회자 : 시대적으로도 굉장히 전문성이 요구되는 시대잖아요. 그래서 기자들도 사실 뭐 기자가 어떤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죠. 매일 취재활동을 하다보면 전문성을 쌓는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은데 매니아층이 나오니까, 기자가 웬만큼 알았다가는 망신당하기 딱 좋은 세상이에요. 여러 가지로 기자라는 직업이 많은 공부도 해야 되고 명예훼손의 위험도 있고 여러 가지로 힘든 직업이 되고 있습니다.
2부에서는 전문성과, 전문성을 쌓는 것이 왜 필요한 지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강사로 모신 분은 1990년에 경향신문에 경력기자로 입사를 하시고 98년도에 산업자원부 외신 대변인으로 가셨다가 2002년에 KDI 홍보실장을 역임하시고 2005년도부터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로 계신 이은형 교수입니다.
최근 우리의 미디어 환경을 보면 예기치 않게 언론계를 떠나게 되는 상황도 있어요. 하지만 꼭 그런 때를 위한 대비라기 보다는 여러 가지로 스스로 전문성을 쌓다보면 어느 분야에서든지 발탁되고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언론계 선배로서 뿐 아니라 사회생활의 좋은 모델로 많은 조언을 해 주실 것 같습니다. 이은형 교수를 모시겠습니다.
이은형 교수 : 먼저 제 얘기를 간단하게 해볼까 합니다. 1998년 2월28일,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를 그만둔 이후 세 번의 경력 변화가 있었으니 제법 변화무쌍했어요. 경력을 바꿀 때마다 항상 그 다음 자리가 준비되어 있었으니 상당히 운이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나 자신을 구조조정해 보겠다”며 언론사를 그만두고 선택한 곳은 국내에서 가장 충실하게 영어강의를 진행하는 KDI국제대학원 경영학 석사과정이었어요. 여러 가지 이유로 유학을 감행하기가 어려웠던 내게는 차선책이었죠.
당시 선택의 배경은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어요. 첫째, 휴직을 하라는 주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사직을 한 것은 언론계에 다시 안주할 가능성을 배제하고 일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배수의 진’을 친 거죠. 둘째로, 전공 선택의 문제인데, 기자경력을 통해 어느 정도 어깨너머로 본 게 있어서 경제 아니면 경영을 택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경영학에 대한 사회의 수요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막연한 계산이 작용했던 것 같아요. 셋째, 외환위기를 계기로 사회가 급변하면서 영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라고 판단했던 거죠.
KDI대학원은 1년 동안 방학 없이 3학기를 진행하는 ‘집중과정’이어서 98년12월 코스를 끝낼 수 있었어요. 이미 그 전에 산업자원부 외신대변인으로 내정되어 있었고 코스 끝나자마자 다음날 과천으로 출근하기 시작했구요.
산자부 외신대변인으로 2년6개월 동안 활동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첫째로는, 공무원의 세계를 알게 된 것이지요. 유일한 4급 여성 공무원으로서 조직의 생리, 공무원의 일하는 방식, 생각 등을 이해하게 되었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던 거에요. 둘째, 나의 고객인 외국 언론사 기자들과 교류하다보니 외국 언론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어요. 한국 기자와는 또 다른 모습의 그들과 함께 하면서 한국 언론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구요. 세번째는 영어를 더욱 자신있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에요. 사실 외환위기 이전에 기자생활을 했던 나는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없었고 자극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대학원에 입학할 당시 영어실력은 정말 형편없었습니다. 하지만 얼굴에 철판을 깔고 적극적으로 발표하고 토론함으로써 빠른 향상을 보였고 외신대변인 때는 매일 영어로 업무를 수행해야 했는데 그것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한계도 있었어요. 계약직 공무원이었으므로 승진을 하거나 업무를 재배치 받는 등의 기회를 가질 수 없었어요. 공무원으로 일하는 기쁨이 있고 또 내 성격에도 맞는 것 같아서 공무원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라도 또 한번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할 것 같았어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2001년 봄 어느 날, KDI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신설했으니 생각해보라는 제의가 왔어요.
다시 공부를 시작했지만 학위가 끝나고 무슨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뚜렷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더라구요. 당시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길은 크게 세가지로 나눠볼 수 있었어요. 첫째, 경영학을 공부하는 만큼 최선의 길은 경영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여성이라는 점, 나이가 많다는 점, 그리고 국내학위라는 점 등이 핸디캡으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되어서 가능성을 크게 두지는 않았구요.
두 번째 길은 기업의 중견간부로 들어가거나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었는데요. 내 전공인 전략, 리더십, 조직 등의 지식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 번째 길은 공무원이 되는 것이었는데 적절한 자리가 있으면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구요.
하지만 제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이런 가능성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었죠. 어느 것도 확실하다는 보장이 없었고 또 가서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도 가지기 어렵더라구요. 박사과정이라는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면서 그저 믿는 것은 “열심히 하면 통한다”는 자기 확신뿐이었던 것 같아요. 학위를 받기까지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겹쳐 때로는 ‘내가 왜 이 길을 택했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죠. 그래도 힘든 과정을 거쳐 지난 5월에 국민대 경영학부에 임용을 받았으니 시작하면서 가졌던 자기 확신이 효력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 제 경험은 이 정도로 줄이고 그동안 내게 후배들이 많이 물어보았던 질문을 중심으로 답을 해보겠습니다.
첫번째는 ‘기자를 그만 두면 무슨 일을 할 수 있냐’는 질문이에요.
우선, 기자로서의 경험, 네트워크를 살려서 홍보, 광고 관련 업무를 하는 것이 있어요. 홍보 분야는 가장 많은 전직기자들이 선택하는 분야이며 자신있게 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죠. 기업과 정부 모두 이 분야에 대한 수요가 있는데 저에게 묻는다면 정부에서 일하기를 권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이런 일을 하려면 경제부 경험이 있는 사람이 유리하겠죠?
두번째는 학업을 통해 경력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 있어요. 여기에도 두 가지 길이 있는데 하나는 저널리즘, 신문방송 등 기자직과 관련이 있는 공부를 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자신의 취재 분야 또는 관심사를 전공으로 선택하는 거에요.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 강의 등의 일을 할 수도 있고 기업으로 갈 수도 있어요. 또는 글쓰기를 전업으로 삼을 수도 있겠구요.
그 다음으로 많이 묻는 질문이 ‘제2의 경력을 준비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는 언제냐’는 질문이죠. 물론 적절한 시기라는 것은 없는 것 같아요. 각자 자신의 제2의 경력을 어떤 방식으로 준비하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고 굳이 나누자면 세 가지 정도로 그 유형을 나눌 수 있을 텐데요.
일단 기자직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느끼거나 너무 힘들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경력 5년 이내에 그만두는 것이 낫다고 봐요. 그만두기 전에 자신의 진로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하죠. 이런 경우 기자로서의 경험을 무형자산으로 활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러나 공부를 하든, 다른 일을 하든 상대적으로 시간이 충분하므로 제2의 경력을 선택하고 준비하는 데에는 유리할 거에요. 제2의 경력이 주요 경력이 될 것이구요.
다음에, 기자직이 어느 정도 적성에 맞고 재미있지만 제2의 경력도 너무 늦지 않게 시작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10년차 정도에 그만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요. 여성이므로 상대적으로 시간이 충분하므로 학업을 다시 시작해도 괜찮으며 전환점으로 하나의 일을 거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로 다시 옮겨갈 수도 있구요. 기자로서의 경력이 10년 정도 되면 그 경력을 최대한 활용해 지렛대로 삼을 수도 있겠죠? 기자 경력과 제2 경력이 비슷한 비중을 갖게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기자로서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그만두는 경우도 좋은 선택이라고 봅니다. 물론 이 경우에는 대개 언론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될 거에요. 최근 대학에서는 실무경험을 점점 높게 평가하는 추세이므로 강단에 서는 것도 가능할 것이구요. 기자 경력이 주요 경력이 되고 제2 경력은 보완하는 수준에 그치게 되겠죠.
다음에 궁금해 하는 것이 ‘기자 하다가 다른 일을 하면 가장 어려운 점이 뭐냐’ 하는 거에요. 어려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우선 ‘말을 아끼는 것’이 참 힘들죠. 기자는 어느 자리에 가서도 어렵게 느껴서 말을 아끼거나 우회적인 표현을 쓰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잖아요. 기자 생활 5년 이상 한 사람이라면 아마 자신도 모르게 모임의 대화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더구나 표현이 거칠거나 다소 무례하게 들릴 수 있는 화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살펴보아야 해요.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라면 경청하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거죠. 따라서 말을 아끼고 ‘듣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구요.
다음으로 어려운 것이라면 그 땅에 발을 붙이는 것을 들 수 있어요. 기자는 대체로 나라를 걱정하고 사회 전반의 문제점을 비판하려 하는 사람이에요. ‘일신의 영달’을 꾀하기 보다는 공동체 지향적이며 거시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거대담론형이라고 할까. 하지만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조금이라도 빨리 ‘기자로서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어떤 기자분들은 취재원들이 ‘기자’를 대우해주는 데 익숙해져 버려서 기자를 그만두고도 예전만큼 대우를 못 받으면 상처를 받는 경우도 봤어요. 새로운 직장에서 동료관계를 제대로 형성하려면 ‘기자시절 때 빼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또 유의할 점을 하나 말씀드리면, 전직 기자로서 기자를 대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거에요. 전직 기자는 기자가 아니죠. 그런데 그걸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거든요. 특히 홍보업무를 담당하게 되는 경우 자신의 정체성을 철저하게 홍보담당자로 자리매김해야 되는 거에요. 불과 몇 달 전까지 동료였다고 해서 후배로 취급하거나 절친함을 무기로 삼으려고 해서는 안 되는 거죠. 때로는 후배 기자가 선배로 대접해주기도 하는데 그건 고마운 일이지 당연한 것은 아니거든요. 첫 만남에서 대뜸 내가 어디 기자였노라고 먼저 밝히기 보다는 친해진 후에 자연스럽게 얘기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 좋겠죠.
여러 가지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했는데...... 한가지만 더 해볼께요. 기자 생활을 하면서 제2의 경력에 도움이 되려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냐는 건데요. 일단 기자는 업무를 통해 자연스럽게 몇 가지 중요한 능력을 갖추게 되죠. 이건 어디가서 어떤 일을 하던 도움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전 이런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이 능력이 어떤 거냐 하면, 일단 듣기, 읽기, 쓰기 능력 같은 걸 들 수 있겠죠.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기본이 되는 능력이죠. 다른 어디를 가셔서도 언제나, 어디서나 핵심이 되는 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상대의 말을 잘 듣는 것, 수없이 많은 자료를 읽고 핵심 파악하는 능력 이런 것도 마찬가지구요. 또 자료를 요약하는 것이든,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든 간에 정연하게 글쓰기. 이런 것들 있죠. 말하기까지 잘 하면 금상첨화죠. 이런 능력은 기자시절 거의 매일 훈련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늘 갈고 닦으면 기자로서, 또 제2의 경력에서 모두 유용해 질 수 있는 것이죠.
또 기자로서 도움이 되는 능력 중 하나가 마감시간을 맞추는 능력이에요. 여러분도 그러시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마감은 맞추고 살잖아요. 이 경험은 이후 저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공부를 하든, 공무원으로서 활동하든 마감을 맞추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구요. 반드시 마감 안에 끝내는 습관 때문에 ‘잘 훈련된 프로페셔널’로서 인정받게 되더라구요. 마감이 닥쳐야 시작하는 버릇 때문에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요.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네트워크에요. 기자를 그만두면 취재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는 다시 안 만나게 될 줄 알지만 그렇지가 않거든요. 기자와 취재원으로 만났지만 진심이 통했던 사람들은 이후에도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었고 어려운 순간에 응원을 해 주는 관계가 되는거죠.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 몇 명이나 남을까하고 물어보는거죠. 내가 기자가 아니어도 웃는 얼굴로 밥을 먹고 사는 얘기를 나눌 사람이 하고 생각해 보세요. 그렇다고 기자로서의 정체성을 버리라는 뜻은 아니구요. 오히려 경쟁력 있는 기자가 되어야겠죠. 그렇지만 기자의 경쟁력이 어떤 상대를 제압하려는 듯 매서운 눈빛, 반말투의 거침없는 화법, 강한 비판성 기사 이런데서 나오는 건 아니겠죠? 오히려 부드러운 말투나, 예의 바른 몸짓, 자신의 기사에 책임을 지는 태도, 공부하는 자세...... 이런게 기자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3부: 여기자의 성공적인 커리어 관리 Ⅱ>
- 강사 : 홍은희 명지대 교수(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사회자 : 여기자의 성공적인 커리어 관리라는 주제로 두 번째 강연을 들어보겠습니다. 한국여기자협회 전 회장님이신 홍은희 교수님이십니다. 한 분의 여기자로서 또 여기자협회 전 회장님으로서 너무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셨고 그 끝에 지금은 많은 기자 선후배의 관심과 애정 속에 명지대 교수로 부임하셨는데요, 홍은희 교수님을 소개합니다.
홍은희 교수 : 안녕하세요. 명지대학교 교수 홍은희입니다. 이제 20일 부족한 28년을 뒤로 하고, 기자 생활을 접은 지 벌써 두 달이 가까워져 오고 있네요.
30년이 지나면 새로운 세대로 넘어간다고들 하죠? 저는 얼추 그 비슷한 시기에 청춘과 함께 해온 직종과의 관계를 정리한 것 같아요.
한국여기자협회 세미나의 제2주제가 ‘여기자의 커리어 관리’라고 하더라구요. 이 주제에 대한 발제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니까 내가 걸어온 세월이 과연 자랑스러운 건가...... 여기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기자, 그 중에서도 특히 여기자로서 살아온 게 27년 11개월이네요. 어떤 때는 빛나고 화려했고, 때로는 어둡고 우울했던 것 같습니다. 한 편으로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고, 다른 한 편으로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인생이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듯 해요.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고, 희망과 절망이, 늘 교차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을 가끔 하는데요. 빛나는 기자생활이 아니었던 나의 경험인데, 부푼 희망을 안고 정진해야되는 후배 여기자들에게 과연 보탬이 될 수 있을까.... 하고 사실은 좀 망설여졌던게 사실이에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세미나에 참석하기로 한 것은요, 오늘, 지금 여기에서도 분명히 같은 어려움으로 고민하고, 좌절하는 후배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온겁니다. 여러분들에게 나의 인생설계가 비록 가냘프지만 어둠을 뚫고 갈 수 있는 실오라기라도 될 수 있다면 말이죠. 여기자의 길을 먼저 걸었던 선배로서, 또한 인생의 길을 몇 걸음 앞서 걸어온 여성이니까. 먼지가 수북한 낡은 손전등을 켜는 기분으로. 기꺼이 지나온 나의 길을 더듬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우선 제 방식으로 성공하기란 이야기를 꺼내 볼까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그 뒤에 졸업도 하기 전에 일찌감치 취업을 하게 되었었죠. 여기에서부터 이른바 메이저신문인 중앙일보의 논설위원으로 마감하기까지. 언론인으로서 살아온 저의 지난 날은 한마디로 ‘시대’와 함께 하고 있다고 밖에 할 수가 없네요. 때로는 ‘변한 시대’의 덕을 보았고, 때로는 ‘여전한 시대’ 때문에 분루를 삼키기도 했던 날들입니다. 젊은 시절에는요, 때로 는 세월을 탓했고, 원망하기도 했는데요.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시대를 넘어설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던 것 같네요.
1977년은 경제호황기였죠. 이때 기업들로 하여금 ‘신입사원 모셔가기’경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대학졸업생치고 적어도 두 군데 이상에서 취업승락을 받아놓지 않은 이들이 드물었던 때죠. 그렇지만 전 취업보다는 공부를 계속하고 싶더라구요. 하지만 미국유학을 준비하던 중에 심심풀이격으로 중앙일보 기자직 입사시험에 응시했는데, 이 합격 소식은 인생의 진로를 바꾸어 놓았죠.
그렇지만 기자로서 생활은 첫 단추부터 꼬이더라구요. 수습교육이 끝나고 국별배치를 받는 과정에서 당연히 ‘편집국’에서 신문기자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했었거든요. 그런데 그 예상이 무참히 깨지더라구요. 출판국 배치를 받았어요. 그 것도 가장 순환이 느린 ‘계간미술’부였거든요. 직장의 첫 생활은 실망 가득이었죠.
제 첫 일탈은 다음해에 시도되었어요. 이듬해 1월(혹은 2월) 동아일보에서 수습기자 모집 공고를 냈더라구요. 제가 그 때 동아일보에 원서를 접수했었죠. 하지만 고민을 많이 한 끝에 시험을 치지 않기로 했거든요. 처음에 수습들에게 내걸었던 ‘순환근무’라는 중앙일보사의 인사원칙을 믿어보기로 한거죠. 출판국에 배치되었던 동기들이 하나 둘 편집국으로, 보도국으로 떠나가고 하더라구요. 저도 막차를 타고 편집국행을 했구요. 그때가 1980년 8월이니까 제5공화국의 언론인 살생부가 집행된 다음이었죠.
1981년 8월에는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석사과정에 들어간 것은 진짜 그냥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였어요. 딱히 석사학위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언젠가 기자직을 떠날 것을 대비하는 뭐 그런 이유도 아니었어요. 그냥 ‘가방끈’을 늘이고 싶었는데, 신문기자는 참으로 매력적이더라구요. 원고지의 글이 활자로 변신하면 권위와 위엄이 저절로 풍겨나는 그러니까 마술이었죠. 완전히 전 정신없이 빠져들었었거든요.
신문기자직에 매료되어가는 것과는 반대로 조직에 대해서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죠. 1985년 무렵이었을 거에요. 입사 9년을 즈음하여 조직생태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면서 직장 안에서의 제 미래를 점쳐보게 되더라구요. 제가 가지고 있는 생활방식, 가치관, 삶의 태도, 이런 것들은 성공적인 조직 생리와는 거리가 좀 멀지 않나 싶었어요. 나를 바꿀 것이냐, 아니면 성공을 외면해야 되는 것이냐, 많은 날들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했죠. 마침내 내린 결론. ‘그게 뭐냐’. 저는 제 자신을 고수하기로 했어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나의 삶이 아닌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흉내내기에 불과할 뿐일 것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쳤던 거죠. 체질화된 사람과 흉내내는 사람과의 차이는 누구든 느낄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러니까 ‘굳이 싫은 삶의 방식을 억지로 택하는 것은 내 자신을 두 번 죽이는 것과 똑같지 않겠냐’고 생각한 거죠.
성공을 외면하기로 결정하긴 했는데, 이게 한갓 오만함이더라구요. 이걸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성공이 아니라, 기자로서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더라구요. 둘째아이를 출산한 다음이었는데, 승급에서 누락된 걸 알았죠. 그때 양수가 터져 아기가 감염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도 촉진제 맞기를 거부하고 그날 넘기기로 한 두 건의 기사를 썼거든요. 진통 속에서 작성해 가지고 차질없게 출고하게 하려고 했기 때문에 충격이 더욱 컸죠. 그렇지만 그때, 저는 배신감을 누르고, 회사에 남기로 결정했어요.
인사고과권자와 면담을 했었는데 “열심히 하는 기자”라는 답변을 얻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렇다면 내 식으로 어디까지 성공할 수 있는지 보겠다’고 생각했던거죠. 이게 언론사 생활 내내 지니고 있던 제 행동의 기준이었어요.
제가 취재기자 하던 시절에는 주로 담당했던 분야가 미술, 방송, 패션, 소비자, 여성, 건축(인테리어)... 이런 거였거든요. 그래서 특종기사보다는 차별화된 기획기사로 승부를 걸었어요. 스트레이트 기사로 사회면 톱으로 실린 것도 ‘특종상’이 아니고 ‘우수기획상’을 받았으니까. 어쨌든 상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는데 그래도 이런저런 명목으로 기획상 몇 개는 받았거든요. 그러니까 직장생활동안 내내 저를 쫓아다니며 피곤하게 했던 승진누락의 덫에 대한 약간의 위로는 된 셈이죠.
여기다가 ‘시대의 덕’이 좀 보태져서, 야전사령관이라는 부장직을 6년이나 누렸어요. 별명까지 ‘부장전문’이었어요. 그 덕분에 1985년 큰 아이를 낳으며 세웠던 ‘ 편집국 최초의 출산여기자’ 기록이 있었는데, 최초의 여성문화부장, 논설위원의 기록까지 더해졌죠.
물론 나중의 그 두개 ‘중앙일보 최초’ 기록이 순탄하게 얻어진 것은 결코 아니죠. 외환위기 때문에 조직에서 군살빼기와 축소작업이 진행되는 중이었거든요. 그때 제가 맡고 있던 생활과학부는 조직표상에서 아예 사라져 버리면서, 입사 4년 후배가 맡고 있던 경제부로 흡수통합 되었어요. ‘내 식의 성공은 여기까지’라고 생각을 했죠. 그래서 전 ‘조직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면서 사표를 던졌어요. 그런데 그 사표는 일주일간 수리되지 않더라구요. 그리고 선배들께서 충고하셔서 결국 그 인사를 받아들였어요. 만약 그 때 끝내 의사를 번복하지 않았다면 문화부장의 기록은 이루지 못했겠죠?
그리고 고비는 또 있었네요. 문화부장에서 편집위원으로 발령난다는 통지를 받았을 때였어요. 전 이제 정말로 ‘조직이 판단한 나의 효용의 한계구나’ 하고 받아들였어요. ‘이리저리 골방을 옮겨다니며 서서히 시들어가다 조직을 떠나는’ 그런 ‘조직원의 자연사’의 과정. 그게 정말 생리적으로 저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두 번째로 사표를 제출했죠. 조직에 부담을 주지 않고 스스로 새 출발을 해야겠다, 이렇게 다짐했죠. 그런데 이번에도 사표가 한 달 가까이 수리되지 않더라구요. 조직과의 인연은 아직 끝이 아니었던 거죠. 결국 이번에도 회사의 명에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때도 마찬가지죠. 역시 끝까지 내 결정을 고집했더라면 논설위원의 기록을 세우지 못했을 거에요.
‘내 방식으로 성공하기’에서 스스로 다짐했던 것이 있다면,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어요. 결과에 대한 판단이 나와 조직이 다를 때, 조직의 결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던 거죠. 그러나 그 기저에는 ‘가장 소중한 것은 내 자신’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 자신이 ‘조직이 그만 나가주기를 바라는 천덕꾸러기’가 되지 않도록 늘 경계했죠. 조직이 떠나라는 사인을 구체적으로 내리기 전에, 한 발 먼저, ‘숨겨진 사인’을 읽어내려고 애를 썼어요. 조직 전체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의 나의 위치랑 연결을 지어 현재와 미래를 판단하는 힘, 이런 게 이런 과정을 통해 길러졌습니다.
여러분, 한 때 사랑했던 연인들도 언젠가 이별을 하죠.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별의 시기에요. 너무 늦은 이별은 찬란했던 사랑을 할퀴고 녹슬 게 할 거에요. 그러나 불행은 ‘언제가 적당한 시기인가’를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사랑을 영원히 아름답게 간직하려면 조금 빠른 작별이 오히려 낫습니다. 지난 8월31일 기자직을 정리하고 교수로 변신한 것은 이런 뜻에서 였어요.
여러분께, ‘인생의 큰 틀을 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조직의 숨겨진 사인을 읽어내는 데에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피터의 원리’, 들어보셨죠? 저에게 있어 ‘피터의 원리’는 큰 도움이 되었어요. 피터의 원리가 이런 거죠. 행복한 조직생활을 하기 위한 방법인데요, 승진할 자리 보다 그 다음 번 승진 자리를 쳐다보고 승진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라는 충고에요. 그러니까 예컨대 자신이 어떤 부서의 차장이라면 그 부서의 부장을 꿈꾸며 노력을 경주하지 말고, 그 부서의 장이 다음번 어떤 자리로 승진하는 것인지를 살펴보고, 이게 포인트죠. 그런 다음 자신이 그 부서의 장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판단하라는 거에요. 저는 이 원리를 이용하여 조직을 들여다 보았어요. 현재의 직급, 그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면면들, 다음의 자리, 다음 자리가 요구하는 일, 그에 맞춘 사람들의 면면을 분석하고 예상도를 그려나갔죠. 그 가운데 제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현재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자리와 주어져도 할 수 없는 일들도 생각해 보았구요. 그렇게 하니까 제 미래에 대해서 답이 나오더라구요. 누구보다도 잘 할 수 있다고 저 스스로 판단한 일이 저에게 주어지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는 먼저 일정기간 기다리면서 다음 기회를 보고. 이건 사표소동으로 배운 교훈이기도 하죠. 그러면서 최선을 다하다가 마침내 기회가 오지 않으리라는 ‘숨겨진 사인’을 읽으면 미련 없이 꿈을 버리기로 한 거에요.
기자직을 떠난다는 것은 정말,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자직 뿐 아니라 어떤 조직에서 일을 하더라도 그 조직과 결별하기란 쉽지 않을 거에요. 더구나 다른 일과 역할이 예정돼 있지 않다면 자의적 결별이란 거의 불가능한 게 아닐까 싶은데요. 조직의 울타리는 그만큼 안온하고 달콤한 것이기도 하죠. 그러나 자신이 설립한 회사라고 해도 마찬가지에요. 언젠가는 은퇴해야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그걸 피할 수는 없습니다.
저한테 ‘인생의 큰 틀 짜기’를 가르쳐 준 사람은 후배에요. 언론계 경력으로 따지면 10년도 더 뒤쳐진 후배이지만, 그는 일찌감치 ‘인생의 큰 틀 짜기’를 익히고 실천해 온 사람이에요. 차장 진급을 앞둔 고참 기자시절이었는데, 같은 부서에서 일하던 젊은 후배 얘기였어요. 자신이 세운 삶의 여정과 실천과정을 들었는데, 정말 그제서야 신문 기자생활에 흠뻑 빠져 앞뒤 좌우도 살펴보지 않고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라구요. 반성했고 계획을 세웠죠. 그때 당시 분위기로서는 45세 정도이면 조직에서 수명을 다할 것 같더라구요. 몇 년 뒤에 일본 연수를 다녀오고 난 다음에는 계획을 50세로 정정했어요. 세상은 변하고 있었고, 특히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급속도로 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일본연수를 다녀온 뒤 한 대학에서 강의를 요청해왔어요. 대학 강단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었죠. 아마도 석사학위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죠. 그렇지만 전 석사과정 입학에도 물론이고, 학위를 딴 이후에도 강단과 나를 연결지어 생각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캠퍼스를 오가니까 자꾸 박사학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솟아나더라구요. 딱히 그것으로 ‘교수가 되겠다’ 뭐 이런 구체적 계획은 없었는데, 그래도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의 마지막이 ‘박사학위’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더라구요. 조직에서의 삶이라는 게 자신이 좌우할 수 있는 부분이 극히 적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던 것 같네요.
아니면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50 이후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의 힘이 작동했을 수 있겠구요. 큰 틀 짜기는 이렇듯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새 미래를 준비하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조직과 빠른 이별을 해야 할 시기라고 판단했을 때 제가 기댈 수 있는 확실한 물증이 박사학위증이었죠. 현장에서 풍부한 경험을 축적한 많은 이들이 대학강단을 꿈꾸죠. 꿈꾸지만 벽에 부딪치게 하는 게 바로 학위문제에요. 대학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 흔한 학회조차 단 한군데도 가입하지 않았지만, 제2인생은 내 손에 쥐고 있는 학위증으로부터 펼쳐지더라구요.
박사학위를 받고 난 이후 전 사회생활 은퇴 이후의 생활을 그려보곤 해요. 아직 밝힐 수는 없지만 대체적인 윤곽은 잡혀져 있습니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어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가볍게 던진 정보라도 귀담아 들으며 하나 둘 주춧돌을 놓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꿈이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싶네요.
이제 이야기를 정리해야겠습니다. 30년 가까이 언론계에 종사하다 현직에서 곧바로 대학으로 옮긴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더라구요. 제 전직에 대해 선후배들이 많은 축하를 해주고, 관심어린 눈으로 지켜봐주는 것은 이런 까닭이 많겠죠. 그렇지만 전 후배들이 언젠가 닥쳐올 미래, 그것을 위해 오늘 박사학위를 따는 일에 열중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언론인으로서 가장 성공한 인생이라면 단연코 언론계에서 성공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이제는 여기자의 수가 서울의 신문·방송·통신만 해도 6백명에 육박하고 있어요. 제가 기자로서 자라왔던 시대와는 결코 같지 않은 시대입니다. 이제 중앙일간지에 여성정치부장, 편집국장, 주필, 사장이 나오고, 방송사에도 부국장, 논설실장이 나오고 있어요. 이제 어쩌다 한 명이 나오는 식은 끝나야 합니다. 언론계의 여성 주류화는 기필코 달성해야 할 후배들의 과제이기도 하구요.
그렇지만 다만, ‘일에 치여서, 또는 조직에 함몰돼 자신의 인생 전체를 관조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빚어서는 안 된다’는 걸 말하고 싶네요.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박사학위가 아니라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이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죠.
-일시: 10월 21~22일
-장소: 제주도 서귀포시 KAL호텔 대회의장
<1부: 언론 보도에 따른 명예훼손과 대처방안>
-강사 : 언론중재위원회 교육홍보팀 박재선 변호사
-토론자: 동아일보 김진경 차장, 스포츠투데이 정숙 기자, SBS 권애리 기자
-사회자: 김영미 한국여기자협회 부회장(연합뉴스)
사회자 : 언론보도에 따른 명예훼손과 대처방안에 대해서는 언론중재위원회에 계신 변호사님께서 구체적인 말씀을 해주시겠습니다. 박재선 변호사님께서 자리해 주셨습니다.
박재선 변호사 : 강연의 주제는 ‘언론보도에 따른 명예훼손과 대처방안’ 입니다. 이런 분쟁이 ‘왜 생기느냐’ 하면 언론사는 언론의 자유, 즉 보도의 자유를 주장할 테고, 그러면서 다른 개인의 인격권이 침해되겠죠. 그러면서 언론의 자유와 인격권이 충돌하게 되는 그런 현상이 이제 언론보도에 따른 분쟁의 형태가 됩니다. 법적으로 말하자면 즉 언론의 자유와 인격권의 충돌 문제겠죠. 그러면 ‘대처방안이 어떤 거냐’고 하면, 법리로 가서 여러 가지 판례와 사례를 통해서 어떤 경우에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는지 그것을 통해서 대처방안을 꾸며 보았습니다.
81년도에 지금의 중재위원회가 생겼는데, 그 이후 2004년까지 조정신청 접수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언론 통폐합이 풀리고 언론 매체도 늘었고, 참여 정부 들어서는 정부가 많이 신청을 하고 있어요. 그 다음에 또 국민들도 권리 의식이 많이 함양이 되어서 예전에는 ‘언론사를 상대로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하겠다’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요즘에는 상담이 많이 오고 있죠. 작년에는 752건이었고 점차 늘어가고 있고요. 2002년에 왜 500건밖에 되지 않는지 이유를 혹시 아세요? 예. 월드컵 때문에 사람들이 거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언론에서도 축구 이야기를 하고, 붉은 악마를 하니 중재위원회도 대한민국도 천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희가 구성해 본 것을 본격적으로 들어가자면, 처음에는 언론보도로 인해서 어떤 인격권이 침해가 되고 있는지 보니까 명예훼손에서부터 해서 사생활 침해, 특히 이것을 질문 많이 하셨는데…, 이런 것을 살펴보겠고요.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지 권리 침해를 예방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두 번째로 인격권이 침해됐을 때, 우리나라 법제 하에서는 어떤 식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지 살펴보겠고요. 세 번째는 중재위원회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언론보도의 인격침해와 권리 침해 예방으로, 언론보도에 의해 침해된 인격권, 주로 많이 침해가 되고 있는 인격권이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명예훼손. 소송에서 가장 많이 판례가 쌓여있죠.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언론전담재판부라고 있거든요, 25부 26부. 거기서 대부분 8~90%는 명예훼손 소송입니다. 그 다음에 이제 나머지 초상권 침해, 음성권, 사생활 등…. 의미는 모두 아시겠죠?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람들의 객관적 평가라 해서, ‘이번 여기자협회 세미나에서 박재선 변호사가 강의를 모두 틀리게 했다’ 이런 보도라든지, 게시판에 글이 올라간다면, 어떻습니까? 박재선 변호사가 사람들에게 받는 객관적 평가가 떨어지게 되겠죠. 그래서 그 평가가 저하되면 ‘명예훼손’이 되는 겁니다. 그 다음에 여기자협회 강연에서 ‘이화순 차장님이 졸았다’라는 멘트가 게시되면 어떻습니까? 이화순 차장님이 가지고 계신 사회적 객관적 평가가 떨어지는 거죠. 저하된다, 그러면 명예훼손이 되는 거죠. 초상권은 그 사람의 얼굴이라든지…. ‘개똥녀 사건’을 생각하시면 되요. 물론 잘못하긴 했지만 지하철에서 강아지의 변을 그렇게 하는 모습을 찍어서 올린다, 블로그라든지 홈피라든지 하는 곳에 그 사람의 동의를 받지 않고, 그러면 초상권 침해가 되겠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초상, 즉 자기 얼굴이나 특징이나 식별할 수 있는 신체적 특징이 개똥녀에게 있는데, 그 분에게 동의 받지 않고 올린다면 초상권 침해가 되겠죠. 그 다음 음성권, 즉 ‘말’에 대한 권리입니다. 이번에 그 이상호 기자 X파일 사건 생각하시면 되죠. 안기부 도청사건말입니다. 그 사람의 ‘말’에 대한 권리, 즉 언론사 간부와 대기업 간부가 갖고 있는 그것을 침해한 것이죠. 그 다음 성명권, 이름에 대한 권리. 이것도 소송은 거의 안 걸리는데, 이번에 중재위원회에서 최초의 직권조정결정이 100만원짜리 나간 것이 있거든요. 언론중재법 사상 최초에요. 최초이자 마지막인데요, 부산 중재부에서 기업신문을 상대로 해서 받아냈는데, 바로 성명권 침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라이버시 침해. 정형근 위원의 호텔방 사건 생각하시면 됩니다. 의원이 호텔방에서 뇌물을 받았다, 이런 건 공공성이 있어서 괜찮은데 만약에 거기서 그냥 유부녀랑 들어갔다가 나왔다, 이런 건 프라이버시 침해가 되죠. 이 다섯 가지에 대해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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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차관이 땅 투기를 했다, 이러한 보도인데 명예훼손이 되는 거죠. 차관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게 되는 거죠. 품성이라든가 덕행이 손상되는 거니까. 명예훼손입니다. 그런데 이게 이제 잘못된 보도라고 해서 정정보도가 나왔다고 하죠. 이게 잘못된 보도다, 왜 잘못된 보도냐 하면 차관이 땅 투기한 게 아니라 부인이 장인어른한테 상속받아서 한 것이기 때문에 적합하다, 이런 식으로 정정보도가 나갔어요. 원래의 보도는 그런데 명예훼손이죠. 그런데 만약에 이게 잘못된 보도가 아니라, 즉 상속받은 게 아니라 땅 투기를 했다고 그러면 명예훼손이긴 하지만 SBS는 책임을 안집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게, 이 보도가 잘못된 보도라 해서 문제지만 원 보도 내용이 진실한 것이라고 한다면, 즉 땅 투기를 했다면 이 사람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떨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SBS는 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죠. 그러나 SBS가 책임을 안지는 경우가 있는데 어떤 경우냐면 이것을 갖추었으면 명예훼손을 하더라도 책임을 안집니다. 공공성과 진실성을 갖추었을 경우죠. 우리 정부 차관이 어떤 행태를 보이냐, 그런 것을 알 권리가 있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공공성이 있는 보도죠. 그리고 만약에 땅 투기가 맞다, 진실한 보도다 라고 한다면, 이 두 요건이 갖추어진다면 명예훼손이더라도 위법성이 소멸하게 됩니다. 따라서 여러분들 입장에선 명예훼손, 이 부분 보다는 이쪽에 더 초점을 두셔야죠. 오늘 알고 가셔야 할 부분은 공공성과 진실성, 혹은 공공성과 상당성 부분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명예훼손 부분에 들어가서 피해자 입장에서는 어떤 때 명예훼손 소송을 할 수 있는지, 성립요건이 필요한데 우선 피해자 추정이 돼야하죠. 알아보죠. 그럼 여러분들 입장에서는 거꾸로 말하자면 피해자 추정이 안 되면 명예훼손이 안 된단 거죠. 그러니까 아무리 보도 내용이 사회적 평가를 저해한다고 해도 피해자 추정이 안 되면 명예훼손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되죠. 그 X파일 사건에서도 방영금지가처분 판결나고, 인용판결 나고, KBS에서 언론사고위간부, 대기업고위간부, 이렇게 나왔거든요. 실명으로 안 나오고. 그게 왜 그렇게 되었냐면 그 변호사들이 피해자 추정을 시키지 말라, 이렇게 해서 그런 거거든요. 그러니까 내용은 명예훼손이지만 누군지 모르게 해서 명예훼손이 안 된다는 것이죠. 그러면 본론으로 돌아가서, 실명 보도를 하면 당연히 피해자 추정이 되겠구요. 익명처리를 하고 있죠. 언론에선 피해자 추정이 안 되려구. (시청각 자료 보여주며) 이건 스포츠 신문이었고, 이건 MBC 방송이었는데, 진희경씨였거든요. 실명 보도를 안했는데, 피해자 추정이 된다고 봤어요. 90년대였는데, 진 모양이 호텔에서 손님을 접대했다 이런 식으로 보도가 나온 거죠. 그래서 그 사람의 덕행, 명성 이런 걸 떨어뜨리는 건 다 명예훼손이 되는거죠. 우리가 익명처리를 했기 때문에 책임 못 진다 라고, 피해자 추정이 안됐다고 이제 얘기를 하는데, 우리 법원의 입장은 이거에요. 보도 내용과 주위 사정을 조합해 봤을 때 독자나 시청자들이 누군지 알 수 있다, 그러면 실명 보도를 안했더라도 피해자 추정이 가능한거죠. 그래서 이것도 처음 나오고, 모델 나오고, 연예인도 했고 모델도 했고 그 당시 26세. 그러면 진 누구누구라는 걸 알 수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것도 책임을 졌죠. (또 다른 시청각 자료 보며)그 담에 이거는 MBC였는데 피해자가 언론이었어요. 그 분이 음주운전을 하고 가다가 걸린 거예요. 근데 그때 마침 MBC 카메라 출동이 와서 취재를 하고 있었는데 촬영을 갔죠. 그런데 이분이 취재 거부를 해서 다음날 보도가 나왔는데 모자이크를 해 줬어요. 모자이크 처리 하고 누군지 모르게 하면 피해자 추정이 안 되는데 이 사건은 왜 피해자 추정이 인정됐냐면 일단 자막처리를 ‘모 방송사 기자’ 이렇게 해 놓고 모자이크 처리는 했지만 음성이 변조가 안됐던 거죠. 그런데다가 이 분이 뉴스 앵커 경력이 있는 중견 방송인이었어요. 그러니까 목소리가 유명한 사람이죠. 그래서 모자이크 처리는 됐지만 음성변조는 안돼서 피해자 추정이 인정됐던 사건이죠. 그래도 이건 피해자 추정이 됐지만 MBC가 이겼어요. 왜 그러느냐. 공공성과 진실성이 있었거든요. 왜냐면 언론인의 어떤 사회적 활동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거죠. 여러분도 조심하셔야 돼요.
두 번째는 구체적 사실의 적시입니다. 피해자가 먼저 추정이 돼야 되고, 자신의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있는 구체적 사실의 적시가 있으면 명예훼손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럼 한마디로 여러분 입장에서 바꿔 말하면, 의견 표명의 경우에요, 의견 표명의 경우에는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언론인이. 사실의 적시 부분만 명예훼손이 되느냐 이게 공공성과 진실성을 갖췄나 이것을 사실 적시부에서 하고, 의견 표명은 기자의 언론의 자유의 핵심 영역으로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다른 시청각자료 보며)이건 조선일보였는데, 검찰에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는데 의견 표명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한 경우죠. 이 사실의 적시 부분은 검찰이 영장 없이 계좌를 추적했다, 라는 사실이죠. 구체적 사실의 적시죠. 그리고 금융실명보안법상 영장이 있어야 되는데 없이 했다, 이것은 검찰의 명예가 훼손되는 부분이에요. 피해자 추정 되죠. 그 다음에 사회적 평가가 저하되는 구체적 사실의 적시가 있죠. 그러나 이것도 조선일보가 이겼어요. 왜 그러냐. 공공성과 진실성을 갖추었기 때문에. 검찰의 업무의 적법성. 이것은 언론인이 감시하고 비판해 줘야 하죠. 그래서 공공성이 있고, 그리고 이게 진실성도 갖췄습니다.
의견표명에 대해 좀 더 보시면 의견표명은 원칙적으로 자유롭다, 이렇게 말씀드렸는데 사실의 적시 부분은 명예훼손, 의견 표명은 자유롭다, 그러나 한계는 있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자유로워요. 이게 이제 조정신청이 된 건데, 작년도 노무현 대통령이 언론정책에 대해 비판한 건데, 국정홍보처에서 불필요한 적대관계다 라고 해서 조정신청을 했어요. 명예신청이라고 했는데 결국 결론은 기각이거든요. 왜 기각이냐면 이건 사회적 평가는 저하되는데 구체적 사실의 적시가 아니에요. 기자의 의견표명이기 때문에 대상이 아니다, 라고 해서 기각이 되었어요. 원칙적으로 사실(fact)만 정확하다면, 의견 표명은 자유롭다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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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지금 이 앵커 멘트 중 어떤 부분이 손해배상에 해당되었느냐 하면요, ‘한심하다 못해 분통이 터진다’는 얘기와, 청렴한 순백의 법조인에 비해 ‘사람답지 못한 사람’으로 지칭한, 이 두 멘트가 있었어요. 이 멘트 때문에 MBC 와 앵커맨이 3000만원의 배상을 했죠. ‘분통이 터진다’ 이런 표현은 좀 한도를 넘었다고 본거죠. 방송 매체이다 보니까. 또 앵커맨이 원고대로 읽지 않았어요. 앵커맨이 즉흥적으로 주관적 표현을 한 것 같아요. 그런데 또 (나눠준 자료집의)13페이지 보시면, <오마이뉴스>에 더 심한 사건이 있거든요. 더 심한 용어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항소심에서 이겼어요. 1심에서는 졌는데. 오마이뉴스가. 그러니까 일률적인 게 아니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보는 거죠. 이 사건의 경우 지만원씨가 이런 것을 유도했다, 5.18 관련 광주 시민들을 모욕하는 광고를 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오마이뉴스가 비판하는 글을 썼거든요. 그러므로 원고가 수인해야 할 범위다, 이런 식으로 된 거죠. 이건 최근에 인신공격으로 보지 않은 사건이죠.
(동영상 변호사 관련) 그 변호사는 변호를 잘못했어요. 뒤에 변호사가 이길 사건을 불성실하게 소송 수행을 했어요. 이길 사건을 지게 만든 거죠. 그런 보도가 나오는데 기자는 면책이 되었어요. 명예훼손이지만 공공성과 진실성을 갖춘 보도거든요.
그래서 방금 말씀하셨지만 MBC는 왜 책임을 지냐면, 자신들이 공표한 내용에 대해서는 다 책임을 져야 하는 거거든요. 언론사는 인용 보도한 거라도 전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 대신 기자는 면책이 되죠. 명예훼손이지만 공공성과 진실성을 갖춘 거니까.
그러면 진실성을 갖추지 못한 보도도 있을 수 있는 거거든요. 나중에 오보로 밝혀지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경우에도 언론인이 면책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상당성이에요. 상당성이란 뭐냐,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필요한 조사와 확인절차를 다 거쳤느냐, 그런 객관적이고 타당한 취재원을 확보하고, 당사자를 만나보고 대립된 이해관계가 있으면 양쪽을 다 만나보았느냐, 중립적이냐 그런 것들, 열심히 노력을 했느냐 이런 것들을 봐서 오보로 밝혀지더라도 면책될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습니다. 이런 게 상당성이죠.
(자료집)15페이지를 보면 공공성 같은 건 소송 가시면 거의 다 인정이 되요. 페이지 (예시자료를) 보시면 PD의 역사관 정도로 비판하는 것은 공공성이 있다고 하는 판결이 있었어요. 진실성을 입증 못해서 KBS PD가 이긴 사건이에요. 세 번째 동그라미 된 사건은 아까 그 음주운전 관련 사건인데요, 언론인의 사회적 활동에 대한 비판은 해줘야 한다는 내용이죠. 여러분의 행동은 공공성을 갖고 있다는 거죠.
공공성과 관련된 판례 하나 보시면, 사회부 기자들이 조심해야 하는 건데, 타인의 범죄 행위 보도 시에는 익명 처리를 해줘야 된다는 것이 원칙이에요. 90년대 판례인데, 이혼 소송 중인 30대 주부가 제 3자를 시켜서 남편과 남편 친구를 폭행을 했다, 이걸 보도를 해도 되는데 문제는 신원을 공개했다는 거죠. 여기 이름 나오고, 주소, 직업 의류 판매상 이런 식으로 나오기 때문에 이 분이 무죄 판결을 받아서 소송을 낸 거예요. 언론사가 패소를 했던 그런 사건인데, 15페이지 마지막 판례 보시면 나와 있어요. 일반 국민들이 범인이나 범죄 혐의자에 대한 신원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범죄 사건 보도는 공공성이 있어요. 그러나 그 범죄 사건을 누가 했는지, 범인이나 범죄 혐의자는 알려서는 안 된다 라는 게 법원의 원칙이죠. 이 사람이 확정판결 났어도, 유죄판결 났어도 원칙적으로 실명보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게 법원의 입장입니다. 그런데 예외는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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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이 보도의 경우 공인의 경우 실명보도가 가능하고, 그러더라도 공공성은 인정된다는 거죠. 문제는 오시덕 의원이 이런 혐의로 검찰이 소환 받은 바가 없다는 거죠. 공공성은 인정되나 진실성, 상당성이 관건이 되는 거죠. 진실한 보도가 아니라면 정정보도라든지. 나중에 정정보도가 나갔어요. 공인의 경우 실명보도가 인정은 된다는 것이고. 그렇다고 공인의 경우 항상 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요.
24페이지 보시면 언론 관련된 판례가 많이 없거든요. 공인으로 인정된 경우가 있고요. 인정되지 않은 경우도 몇 가지 있고요.
다음에 이제 상당성인데요. 이건 이제 유해식품 보도거든요. 크게 문제가 됐던 건데, 작년의 쓰레기 만두 사건과 비슷한 거예요. 골뱅이 번데기 통조림에 방부제가 섞였다는 거죠. 이런 보도가 나왔는데, 여러 언론사가 다 얘기를 했어요. 그러고 나서 이 대표들이 대법원까지 가서 무죄판결을 받아서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어요. 결론은 언론사가 이겼습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이게 허위보도로, 오보로 밝혀지더라도 기자들에게는 이걸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인정된다는 거죠. 사실 이걸 부장검사실에서 기자들이 공식 브리핑을 받았고 보도 자료를 받았어요. 그걸 보고 취재를 해서 보도를 했기 때문에 상당한 근거가 있다는 거죠. 이 회사는 억울한 게, 몇 년 동안 해서 망했다는 거죠. 경제부 기자들은 조심을 하셔야죠. 만두 사건에서 식약청 보도도 얘기하는 게, 열 곳 중 다섯 곳이 혐의가 있다고 하면 나머지 다섯 곳도 피해를 보는 거예요. 기업 보도가 그게 치명적이죠. 나중에 언론에서도 PR 보도를 많이 해줬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공식 발표에 기한 것이라 상당성을 인정받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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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보면 3명의 국회의원이 나오는데요, 모자이크와 음성변조는 저희가 한 거고 실명으로 나왔어요. 얼굴도 나왔는데, 세 명이 중재 신청을 했는데 SBS가 합의를 안 해 줬거든요. 그럼 불성립이 되는 거죠. 그 중에서 윤철상 의원이 소송을 제기했어요. 결정적인 건 뭐냐면 남경필 박종희 의원 같은 경우에는 기자를 만났어요. 뒤에 인터뷰도 나오거든요. 뒤에 자기 반론과 인터뷰가 나오기 때문에 소송은 제기 안했어요. 그러니까 얼마나 기자분이 반론을 실어주느냐, 만나봤느냐 이게 중요한 게, 소송 제기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이죠. 윤철상 의원은 얼굴 나왔는데 안 만났나 봐요. 그래서 상당성이 부족해서 SBS가 져서 5000만원의 배상판결과, 정정보도를 받았죠. 상당성은 중요한건, 당사자를 만나는 게 가장 중요해요. 공공기관의 공식 발표가 없는 경우에는 기자가 얼마나 노력을 다했느냐가 중요한데 이건 당사자를 안 만났으니…. 검찰 관계자도 안 만났기 때문에 상당성 부족, 그래서 SBS가 패소한 경우죠.
(다른 예시자료)이건 이제 상당성이 인정됐던 경우인데요. 4월 1일 KTX가 전면 운행하는데 2월 21일자 보도에서 지금 우리가 실습 경험이 부족하고 교통 신호 시스템이 아직 불안정하다 이런 식으로 비판을 썼는데, 이걸 철도청이 이 신문사를 상대로 소송을 했어요. 언론사가 이겼어요. 왜 이겼냐면 상당성을 인정받았는데요, 상황이 홍보팀에서 기자를 못 만나게 하는 그런 상태에서 KTX 기술 이전을 해 준 관계자를 만나봤고 KTX 제조업체들 만나봤고, 시운전 해 본 기술자를 만나봤기 때문에 이 정도로 하면 신뢰도가 높은 취재원을 대상으로 기자가 노력을 다했다고 보는 거죠. 상황상으로도 신속한 보도가 요구되는 경우였고요.
옛날에 ‘카메라 출동’ 같은 경우에도 당사자 다 만나봤거든요. 그런데도 MBC가 진 경우가 있었어요. 제보를 받고, 이해 관계가 대립되는 그런 사건이었는데, 그랬을 때 오랫동안 취재가 가능하다고 보거든요. 신속한 보도가 요구되지 않는 보도였기 때문에 정확성이 더 요구되죠. 엄격한 것 같아요. 그건 MBC가 졌던 경우고, 법원 가면 상당성이 문제가 되죠. 진실한 보도를 하면 소송이 제기될 여지도 별로 없어요. 이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죠. 얼마나 노력을 다했는가. 여러분의 취재 수첩이나 보도자료, 이런 걸 오래 보관을 하셔야죠. 아까 포르말린 사건 같은 경우에도 민,형사 판결에 5년이 걸렸거든요. 기자분들 같은 경우에 취재 수첩을 잘 잃어버리셔서, 그걸 변호사가 입증을 못하면 지는 거예요. 언론사가 이중 책임을 져요. 명예훼손이라는 것만 원고가 입증을 하면 그 다음에는 원고가 허위보도다 이런 거 입증할 필요 없이 그 다음에 이중책임이 언론사에게 가거든요. 입증자료를 못 내면 패소하는 거구요. 그때도 검사가 만든 보도 자료를 잃어버렸었는데 한 방송사 기자가 찾아냈어요. 그래서 10개 이상의 방송사와 일간지가 한꺼번에 이긴 사건이 있었어요. 그 변호사는 (취재수첩은)5년 동안 보관해라, 요새 얘길 하고 있는데, 힘든 거죠. 그래도 중요한 사건은 오래 보관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이것은 범죄보도에서의 단정묘사에요. 범죄 보도 시에 긴급체포 됐다, 대마초 혐의 이런 건 문제가 없는데, 제목 뽑을 때 단정적으로 써 버리면 명예훼손이 되는 거죠. 지금 긴급체포된 상태죠. 확정판결 나지 않고 지금 기소도 안 된 상태에서 ‘대마초 적발’ 이렇게 써 버리면 현행범으로 체포된 걸로 오인하거나 확정판결 난 것처럼 독자들은 그렇게 오인할 수가 있죠. 법원에서 요구하는 것은 혐의 받고 있으면 혐의, 이렇게 써 달라는 것이죠. 기소가 됐다 그러면 기소, 이런 식으로 무색투명하게 써 달라는 거죠.
SBS가 승소한 주병진씨 강간치사 사건에서, 이것도 일종의 범죄보도인데, 연예인이니까 얼굴 다 나가고 실명 다 나가고 그랬는데, 이건 공공성이 있어요. 이런 범죄 보도 같은 경우는…. 여성 잡지와 SBS ‘한밤의 TV연예’ 이런 데 나왔는데 보도 내용이 주병진씨 강간 치사 혐의에 대해서 “지금 혐의를 받고 있다”, 이런 식으로만 보도를 했어요. 마치 이 사람이 진짜 강간 치사를 한 것 같이 하지 않았어요. 주병진씨 측근 얘기도 들어보고 피해자 측 얘기도 들어보고, 지금 어떤 혐의를 받고 있는지 이렇게만 했지 단정적으로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여성지들 경우에는 주병진씨 안 만났죠. 피해자 측 얘기만 듣고 단정적으로 강간한 것처럼 썼기 때문에 아마 잡지들은 거의 패소했을 거예요. 이런 식으로 해서 범죄 보도는 단정적인 부분은 좀 피하시라는 것이고, 방송 같은 경우 모자이크 이런 것만 잘하시면 되죠.
명예훼손에 대해서 살펴봤는데 여러분들 다른 거 다 잊어버리셔도, 공공성과 진실성 또는 공공성과 상당성 이것만 알아두시면 됩니다.
다음에 초상권 침해를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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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보시면 아시겠죠. 동의 받지 않고 사진을 촬영했기 때문에 이 피해자 부부의 초상권이 침해된 거죠. 게다가 이 분은 증권 투자도 하지 않는 분이었어요. 전혀 관련 없는 기사에 이용했기 때문에 신용이 떨어진 거거든요. 그러니까 명예훼손도 돼요. 그래서 승낙을 받아야 된다는 것이고. 22페이지 보시면 가장 유명한 판례가 있어요. 뉴스위크사 이화여자대학교 사례인데, 동의 받지 않고 여대생들 사진을 찍어서 “돈의 노예”라고 기사를 써서 명예훼손과 초상권 침해로 소송 제기 했던 사건이죠. 3000만원 정도 손해배상 판결이 나왔어요. 이분들은 졸업사진을 찍느라 간 거였는데 이렇게 기사가 나왔네요.
승낙을 받아야 되고, 그리고 승낙범위 내에서 사용해야 합니다. 다른 용도로 사용하셔도 초상권 침해가 됩니다. MBC 미디어 비평에 좋은 사례가 많은데, 이건 방송사가 침해한 사례입니다. KBS PD였는데, 짝퉁 동호회를 운영하는 데 가서 “여기를 이색 동호회로 소개 시켜주겠다”고 했어요. “짝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고 긍정적으로 대답이 나왔는데, 보도로 나가는 것을 보니까 ‘짝퉁이 만연한 실태’를 보도하고 고발을 한 거에요. ‘생각 없이 사는 대학생의 모습’, 이런 식으로 멘트가 나오고, 불법이라고 나오고 했던 거죠.
(강의 동영상)
이것도 승낙은 받았지만 승낙 범위 내에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사용하겠다고 하고 부정적으로 사용했죠. 이 방송이 나간 다음에 KBS가 다시 MBC에게 소송을 제기했어요. 왜냐하면 ‘KBS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거죠. MBC가 이겼습니다. 명예훼손이지만 공공성과 진실성을 갖춘 보도죠. 명예훼손이지만 위법성 조각 사유가 있어서 MBC가 승소했습니다. 이런 경우는 종종 있는 듯 해요.
(자료집)23페이지 위에 보시면 MBC PD가 침해한 사례인데, 발랄한 신입생 환영회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하고서는 나중에 보니까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서 대학생들의 음주 행태를 보도한 거죠.
그 다음, 공인의 초상 사용은 승낙 받지 않아도 언론보도에 관련해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거죠. 박주영씨, 박찬호씨…, 그리고 정치인들의 뉴스는 매일 나오죠. 그 대신 박찬호씨를 CF에 이용한다 그러면 기업에서 동의 받고, 대가를 지불해야 되죠. 그건 초상영리권이라고 해요. 상업적 권리. 그러나 여러분은 언론인이니까 언론 관련해서라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판례가 없는 경우지만 데모 행렬, 시위 행렬, 관중석, 졸업 사진 같은 경우에는 동의 받지 않고도 찍을 수 있다는 것이 학계의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 사생활의 비밀인데요, 이것도 승낙을 받거나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 이 두 가지가 중요한 면책 사유입니다. 예전 유명한 여성 앵커맨 사건이 있는데 이혼 배경에 악성 루머가 떠돌고 있었을 때 하이텔에서 그 소문에 대해 쓴 사람이 있었죠. 이걸 스포츠신문 기자분이 소문을 쓰고 인터뷰 내용을 썼어요. 그랬더니 이 분이 소송을 제기했어요. PC통신에 올린 분을 형사고소 하고, 기자 분에 대해선 민사소송을 제기했는데, 한마디로 명예훼손, 프라이버시 침해, 이 두 가지에 걸린 거죠. 원고가 완전히 승소를 했어요. 1억원과 법정 위자료를 받았죠. 명예훼손은 되죠. 공공성이 있느냐, 이것도 문제인데, 아무리 공인이라도 사생활까지 공공성이 있느냐는 거고, 공공성이 있다 하더라도 진실성에서 문제가 되는 거죠. 사생활 프라이버시권 침해에 대해서는 언론사측 변호사가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를 들었거든요. 그런데 사생활과 관련해서 30페이지 보시면 맨 위에 판례가 이 보도 사건인데요, 정치인이나 유명인 등 공인에 있어서는 정보가 타인에 비해 폭넓게 공지되어야 하는 것이나 공공의 인사에게도 포기할 수 없는 사생활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원칙적으로 사생활을 보호해 줘야 하는 것이고, 그 중에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는 공개가 가능하다. 즉 가족관계 같은 경우에는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로 볼 수 있으나 남녀간의 성적교섭과 같은 인간자유의 최종영역, 불가침영역에 관해서는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이것이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의 한계죠. 원칙적으로 가면 승낙을 받아야 된다는 거죠.
어쨌든 기자 분은 승낙을 받았다고 주장을 했지만 입증을 못하면 패소하는 거죠. 녹취한 것도 증거로 많이 내고 그렇게 하죠. 전화에 응대했다, 대화를 나누었다, 이건 인정을 했나 봐요. 그렇지만 승낙을 했다는데 대해서는 입증이 없어서 패소를 했어요.
그리고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에 대해서는 판례가 별로 없어요. 결혼 사건 같은 경우 판례가 있고요. 생각해보면 이혼했다던가, 아들을 출산했다든가, 해외여행을 갔다든가 이 정도는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라고 볼 수 있죠. 승낙 받지 않고도 가능한…. 그렇지만 출생의 비밀을 알린다든지 하는 것은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라고 보기 힘든 것 같아요.
이것도 단서가 하나 있는데, 진실성을 요한다는 거에요. 인기가수 결혼사건 중 신해철씨 결혼사건이었는데요, 스포츠지에 “신해철씨 9살 연하 여자친구와 올봄 화촉”, 이런 기사가 나왔어요. 그런데 신해철씨랑 여자친구가 소송을 제기했어요. “그 전에 케이블 방송 같은데서 사귀고 있다고 인터뷰를 한 것은 맞다, 그러나 아직 결혼 계획은 없다”는 거에요. 그런데 예측성 기사를 쓴 것 같아요. 신해철씨가 이겼어요. 신해철씨는 1000만원, 여자친구는 2000만원 받았는데요, 결혼 사건이기 때문에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는 맞죠. 그러나 진실한 보도는 아니라는 거죠. 올봄 화촉을 올린다는 계획이 없다, 오보다 해서 사생활 침해가 돼서 신해철씨에게 1000만원을 물어라, 라고 났죠. 여자친구는 공인 관련 보시면 아시겠지만 미스코리아 뉴욕 진이었다가 그 다음에는 그냥 사인(私人)이에요. 신해철씨 여자친구일 뿐이죠. 그런데 그것만으로 공인이 될 수 없다고 판결이 난거죠. 그래서 초상권 침해까지 됐어요. 그 다음에 진짜 결혼을 했어요. 하지만 보도 당시를 기준으로 하는 거니까….
그 다음 음성권 침해인데, 방송사에서 주로 문제가 있죠. ‘2580’이나 ‘PD수첩’, ‘그것이 알고 싶다’ 등에서 잠입취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원칙적으로 동의를 받지 않으면 음성권 침해에요. 녹음 자체도 그렇고 재생해서 사용하는 경우, 전부 음성권 침해에요. 음성권 침해인데, 법문이라든지 판례 같은 걸 보면 면책될 수 있는 길이 승낙을 받는다든가, 마약상을 취재한다면 중대한 공익사항의 필요가 있다면 가능하다는 것이 이론이고, 우리나라에 판례가 별로 없지만, 뉘앙스가 공공성이 인정되면 면책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나오고 있고…. 공공성이 중요한 거죠. 대신 기자가 숨기고 들어가서 하는 것은 민사적인 문제인데, 그걸 뛰어넘어서 타인과 제3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도청하는 경우 있죠. 이번에 안기부 도청 사건처럼. 이런 경우는 공공성으로 해결이 안 되고 형사처벌이에요. 타인간의 대화 내용을 도청하는 것은 수사기관도 영장을 발부받아야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안기부도 이번에 그것이 문제가 된 거 아니에요. 언론은 당연한거죠. 그러나 기자가 대화자가 되는 경우, 32페이지 보시면 나와 있거든요. 이 경우에는 해당이 안 되고 그냥 민사적인 음성권 침해고, 소송을 제기 안하면 문제가 안 되고 공익성을 입증할 수 있다면 가능하지만 기자가 대화자가 되는 게 아니라 제3자간의 대화내용을 녹음하는 경우에는 비껴나갈 수가 없는 거죠. 10년 이하의 징역이라고 나와 있죠. 벌금도 없어요. 타인과의 대화를 녹음, 청취한 자라고 나와 있죠. 그렇기 때문에 안기부가…. 그 이유 보세요. 취득한 것을 공개, 누설한 자. 이게 문제가 되는 거죠.
다음에 이제 성명권 침해인데요, 먼지 알레르기까지 없애준다는 청소기 PR 보도가 있어요. 영국 알레르기 재단의 인증마크까지 획득했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사용소감을 넣었거든요. 주부의 실명이랑 주소까지 나오면서 유치원에 다니는 딸이 알레르기가 있어서 써보니 두 달 만에 효과가 있더라, 이런 보도가 나왔어요.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이 주부는 이 청소기를 사용해본 적이 없고, 인터뷰를 한 적도 없는 거였어요. 그냥 기자가 하숙했던 하숙집 아줌마의 인적사항을 가지고 이렇게 쓴 거죠. 그 대신 명예훼손은 아니죠. 사회적 평가가 저해되진 않으니까. 그렇지만 성명권 침해에요. 승낙 받지 않고 성명을 이용했기 때문에 성명권 침해가 되는 거고요. 이때 두 사람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분쟁의 형태는, 인격권이 침해됐을 때는 이런 식으로 손해배상이라든가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거고요. 금전배상에 관한 것이 있어요. 7월 28일부터 시행된 언론중재법에 손해배상청구가 중재위원회에 들어왔거든요. 기업 같은 경우에는 10억, 20억원씩 청구해요. 그러나 조정이라는 게 뭐냐, 합의로 해결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언론사에서 합의를 안 해 주니까 손해배상 안 나가죠. 부산중재부에서는 직권으로 해서 100만원 나간 경우 밖에 없습니다.
다음 정정보도가 있는데…, 보시죠.
(강의 동영상)
예, 지금 MBC 보도가 2002년 12월 24일날 광화문에서 여중생 추모 촛불행사를 했다 이런 보도인데, 기독교청년협회에서 정정보도 요청을 해서 정정보도가 나왔습니다. 사실 확인 결과 여중생 추모 행사가 아니라 성탄예배였던 거예요. 이때 기자 분께서 오인을 하신 거죠. 바로 잡는다, 이런 게 정정보도죠.
그 다음 한고은씨가 옛날에 박준형씨가 아닌 다른 남자를 태우고 가다가 사고가 났다, 이런 보도가 나왔는데, 이때 정정보도 청구를 해서 이 분이 그때 미국에 있었다고 밝혀졌다고 연예신문에 났죠. PR 및 정정으로 나왔어요. 7~8개월 만에 컴백했는데 출연요청이 쇄도하고 그 이유는…, 하는 식으로 나왔죠.
다음은 반론보도 청구인데, 정정보도는 원부분이 잘못되어서 그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는다, 이런 보도지만 이건 그런 게 아니고 그 부분의 어떤 반론이 잘 실어지지 않았다 라고 하면 그 것에 관련된 반론을 좀 실어달라는 거죠. 바로 잡는다 이런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이 이렇게 주장해 왔습니다 라고 나오는 거예요. 정정보도는 허위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이건 허위 부분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 요건만 있으면 거의 인정되는 거고, 법원에 가면 십중팔구 인용되는 것입니다. 반론보도 청구권이라는 게 말이죠. 중재위원회에서도 거의 다 합의가 됩니다. 이건 조선일보 정기간행물이구 이번에 인터넷신문이 새로 들어왔죠. 노무현 대통령이 경선에서, 사실적 주장, 이것도 의견표명은 안 되요. 그래서 칼럼 같은 데서 의견표명을 한 경우 조정신청을 하면 기각이 되겠죠. 자료 폐기했다 라는 보도가 있는데 피해를 받은 자는 노무현 대통령이죠.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 반론보도문이 실렸습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 주장 사실을 이렇게 실어주는 거예요. 자기는 경선 관련 자금을 폐기한 바가 없고 그때 당시 국회의원 신분이 없었기 때문에 정치자금법 위반도 아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노무현 대통령의 주장을 실어주는 것이고. 정정보도라면 본지확인 결과, 뭐 뭐 라고 밝혀져 바로 잡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죠.
그 다음에 추후보도 청구라는 게 있는데 범죄혐의가 있다거나 형사상 조치를 받았다고 보도된 바가 있는데 몇 년 후에 무죄판결이나 무혐의 처분이 됐다고 했을 때 나오는 거죠.
사회자 : 변호사님의 강연 잘 들었습니다. 간단하게 질의응답 시간을 갖겠습니다.
김진경 : 저희 신문에서 저출산 시리즈 관련 사진 촬영을 했는데, ‘자녀도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사진을 쓰면서 “‘부촌’인 대치초등학교”라고 했어요. 이런 경우 어떻게 됩니까?
박재선 변호사 : 오보는 아니고, 의견표명이죠. 이건 문제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김진경 : 전 초상권 때문에 학교 취재시 모든 학부모에게 승낙받아야 한다고 들었거든요. 그러면 서울시립 아동병원 발달지체아 치료센터 취재의 경우는 어떻게 되나요? 제가 사진촬영한 뒤에 일부 부모들에게 동의를 구하긴 했는데, 어떤 장애아 부모가 너무 또렷하게 크게 보도됐다며 소송을 제기해서 300만원 배상을 했거든요.
박재선 변호사 : 원칙은 승낙을 받고 본래 의도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소송 대상에 해당되는 거죠. 승낙을 받았다 하더라도, 또 용도가 정당하더라도 어느 정도 사용 가능한지를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는 거예요..
정숙 : 연예인 사생활 비밀 관련 소송 분쟁이 많은데, 물론 다수 국민의 알권리와는 무관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스타는 공인 아닙니까. 충분히 공공의 관심사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또 최근에는 여성벤처사업가의 이혼전력 보도한 여성주간지가 승소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프라이버시가 침해됐더라도 대중의 관심사로 받아들이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요. 과연 대중이 알고 싶은 ‘공공의 관심사’의 범위는 어디까지로 봐야 하는 거죠?
박재선 변호사 : 심은하의 결혼에 관련해서 보면, 심은하는 공개 가능하지만 남편의 사생활은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이죠. 이혼경력을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 남편이 소송을 걸면 승소할 가능성 높은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정숙 : 고소인이 기사 내용보다 제목이 더 큰 문제가 돼서 소송을 냈는데, 피고인이 언론사가 아닌 기자 한 사람을 대상으로 할 경우 어떻게 되나요?
박재선 변호사 : 피고가 책임이 없을 경우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정숙 : 취재기자에게만 손해배상이 청구될 경우에는 언론사에게 추후 구상을 요구할 수 있나요?
박재선 변호사 : 보통 소송할 경우 언론사와 취재기자 함께 청구합니다. 언론사가 돈을 배상한 뒤 기자가 잘못이 있을 경우 추후 구상 요청을 하는 방식이죠.
권애리 : 라식수술 받은 뒤 병원 잘못으로 시력 크게 상실했다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검사소홀로 동공에 구멍이 있는 것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소송 1심에서 환자가 승소했습니다. 그러나 병원 관계자는 취재를 거부했고요. 병원 위치와 외경 등 전혀 보도하지 못한 상태거든요.
박재선 변호사 : 그 경우 1심은 승소했지만 아직 판결이 확정된 것은 아닌 상황이죠. 그래서 ‘병원이 잘못했다’고 단정적으로 보도하기 힘든 거예요. 공공성은 인정되지만 진실성에서 위험하기 때문에 익명보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또 시급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대법원의 확정판결 뒤에 보도해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진실성이나 (오보일경우) 상당성을 입증하기가 힘들 수 있습니다.
김수미(일반 질문자) : 기자가 상당성이 있다고 본 것은 1심에서 승소를 했기 때문인데, 법원발 1심 기사는 보도해도 되는 건가요?
박재선 변호사 : 1심 판결이 나왔지만 단정적으로 보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확정판결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병원의 반론이 들어가야해요. ‘혐의를 포착’한 것도 혐의가 있다는 뜻이 아니므로 단정적으로 보도할 수 없구요.
김수미 : 실명보도 관련해서 질문 드립니다. ‘살인마 유영철’관련해서요. 체포 전에는 유모씨, 체포 뒤에는 유영철한 다음부터 후속 보도가 나올 때마다 유영철이라고 보도했는데.
박재선 변호사 : 사실상 공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에 해당되죠. 사회인이 범죄를 저질렀거나 혐의를 받는다고 해서 공인으로 볼 수는 없는 거예요. 원칙적으로는 안되는 거죠.
미국의 경우 사회인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고 할 경우 예외적으로 공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공인이 아니더라도 실명보도 가능한 경우는 ‘JSA 장교 살해 용의자 김중사 실명 보도’ 같은 게 있는데, 이런 건 사안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가능하고요.
사회자 : 그러나 희대의 살인마인 유영철의 진술에 의거해서 시신이 발굴되기도 했고, 범인이라는 점, 즉 사실성이 입증된 것 아닌가요?
박재선 변호사 : 원칙적으로는 사인(私人)은 확정판결이 나더라도 실명보도 할 수 없습니다.
윤창수(일반 질문자) : ‘신해철 결혼 보도 관련 1000만원 배상’에 관련된 질문입니다. 소송 내용은 나의 애정활동에 방해가 생긴다는 게 요지였는데요, 나중에 둘이 결혼하지 않았으니, 과도한 소송의 책임은 물을 수 없나요?
박재선 변호사 : 그때 당시에는 결혼 계획이 없었다는 거죠. 추후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박현주(일반 질문자) : ‘기업형 부동산 활개치다’ 보도시 ABC 컨설팅 회사가 있다고 익명보도했는데, 우연하게도 한 회사가 이름이 비슷해서 망할 위기에 놓였다고 하더라고요. 회사에서 광고를 끊고 협박을 해왔습니다. 이런 경우는 어떤 건가요.
박재선 변호사 : ABC는 익명보도를 한 것이고 우연히 이름이 맞아떨어진 것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연예인 보도시 A군 A양 다 무혐의 처리 되거든요.
김현주(일반 질문자) : 골뱅이 통조림 사건의 경우 당사자가 겪은 고통이 너무 크지 않나요? 언론사는 무혐의 처리 받았지만, 치러야할 대가가 너무 컸던 거 같아요. 보도시 신중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자 : 이런 경우 추후 정정보도를 청구하고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있나요?
박재선 변호사 : 언론중재위가 손해배상까지 같이 할 수 있도록 예정이에요.
사회자 : 냉정한 정의감이 무엇보다 필요한 케이스가 아닐까 싶네요.
<2부: 여기자의 성공적인 커리어 관리 Ⅰ>
-강사 : 이은형 국민대 교수(전 경향신문 기자)
사회자 : 시대적으로도 굉장히 전문성이 요구되는 시대잖아요. 그래서 기자들도 사실 뭐 기자가 어떤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죠. 매일 취재활동을 하다보면 전문성을 쌓는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은데 매니아층이 나오니까, 기자가 웬만큼 알았다가는 망신당하기 딱 좋은 세상이에요. 여러 가지로 기자라는 직업이 많은 공부도 해야 되고 명예훼손의 위험도 있고 여러 가지로 힘든 직업이 되고 있습니다.
2부에서는 전문성과, 전문성을 쌓는 것이 왜 필요한 지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강사로 모신 분은 1990년에 경향신문에 경력기자로 입사를 하시고 98년도에 산업자원부 외신 대변인으로 가셨다가 2002년에 KDI 홍보실장을 역임하시고 2005년도부터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로 계신 이은형 교수입니다.
최근 우리의 미디어 환경을 보면 예기치 않게 언론계를 떠나게 되는 상황도 있어요. 하지만 꼭 그런 때를 위한 대비라기 보다는 여러 가지로 스스로 전문성을 쌓다보면 어느 분야에서든지 발탁되고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언론계 선배로서 뿐 아니라 사회생활의 좋은 모델로 많은 조언을 해 주실 것 같습니다. 이은형 교수를 모시겠습니다.
이은형 교수 : 먼저 제 얘기를 간단하게 해볼까 합니다. 1998년 2월28일,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를 그만둔 이후 세 번의 경력 변화가 있었으니 제법 변화무쌍했어요. 경력을 바꿀 때마다 항상 그 다음 자리가 준비되어 있었으니 상당히 운이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나 자신을 구조조정해 보겠다”며 언론사를 그만두고 선택한 곳은 국내에서 가장 충실하게 영어강의를 진행하는 KDI국제대학원 경영학 석사과정이었어요. 여러 가지 이유로 유학을 감행하기가 어려웠던 내게는 차선책이었죠.
당시 선택의 배경은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어요. 첫째, 휴직을 하라는 주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사직을 한 것은 언론계에 다시 안주할 가능성을 배제하고 일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배수의 진’을 친 거죠. 둘째로, 전공 선택의 문제인데, 기자경력을 통해 어느 정도 어깨너머로 본 게 있어서 경제 아니면 경영을 택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경영학에 대한 사회의 수요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막연한 계산이 작용했던 것 같아요. 셋째, 외환위기를 계기로 사회가 급변하면서 영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라고 판단했던 거죠.
KDI대학원은 1년 동안 방학 없이 3학기를 진행하는 ‘집중과정’이어서 98년12월 코스를 끝낼 수 있었어요. 이미 그 전에 산업자원부 외신대변인으로 내정되어 있었고 코스 끝나자마자 다음날 과천으로 출근하기 시작했구요.
산자부 외신대변인으로 2년6개월 동안 활동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첫째로는, 공무원의 세계를 알게 된 것이지요. 유일한 4급 여성 공무원으로서 조직의 생리, 공무원의 일하는 방식, 생각 등을 이해하게 되었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던 거에요. 둘째, 나의 고객인 외국 언론사 기자들과 교류하다보니 외국 언론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어요. 한국 기자와는 또 다른 모습의 그들과 함께 하면서 한국 언론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구요. 세번째는 영어를 더욱 자신있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에요. 사실 외환위기 이전에 기자생활을 했던 나는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없었고 자극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대학원에 입학할 당시 영어실력은 정말 형편없었습니다. 하지만 얼굴에 철판을 깔고 적극적으로 발표하고 토론함으로써 빠른 향상을 보였고 외신대변인 때는 매일 영어로 업무를 수행해야 했는데 그것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한계도 있었어요. 계약직 공무원이었으므로 승진을 하거나 업무를 재배치 받는 등의 기회를 가질 수 없었어요. 공무원으로 일하는 기쁨이 있고 또 내 성격에도 맞는 것 같아서 공무원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라도 또 한번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할 것 같았어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2001년 봄 어느 날, KDI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신설했으니 생각해보라는 제의가 왔어요.
다시 공부를 시작했지만 학위가 끝나고 무슨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뚜렷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더라구요. 당시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길은 크게 세가지로 나눠볼 수 있었어요. 첫째, 경영학을 공부하는 만큼 최선의 길은 경영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여성이라는 점, 나이가 많다는 점, 그리고 국내학위라는 점 등이 핸디캡으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되어서 가능성을 크게 두지는 않았구요.
두 번째 길은 기업의 중견간부로 들어가거나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었는데요. 내 전공인 전략, 리더십, 조직 등의 지식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 번째 길은 공무원이 되는 것이었는데 적절한 자리가 있으면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구요.
하지만 제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이런 가능성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었죠. 어느 것도 확실하다는 보장이 없었고 또 가서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도 가지기 어렵더라구요. 박사과정이라는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면서 그저 믿는 것은 “열심히 하면 통한다”는 자기 확신뿐이었던 것 같아요. 학위를 받기까지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겹쳐 때로는 ‘내가 왜 이 길을 택했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죠. 그래도 힘든 과정을 거쳐 지난 5월에 국민대 경영학부에 임용을 받았으니 시작하면서 가졌던 자기 확신이 효력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 제 경험은 이 정도로 줄이고 그동안 내게 후배들이 많이 물어보았던 질문을 중심으로 답을 해보겠습니다.
첫번째는 ‘기자를 그만 두면 무슨 일을 할 수 있냐’는 질문이에요.
우선, 기자로서의 경험, 네트워크를 살려서 홍보, 광고 관련 업무를 하는 것이 있어요. 홍보 분야는 가장 많은 전직기자들이 선택하는 분야이며 자신있게 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죠. 기업과 정부 모두 이 분야에 대한 수요가 있는데 저에게 묻는다면 정부에서 일하기를 권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이런 일을 하려면 경제부 경험이 있는 사람이 유리하겠죠?
두번째는 학업을 통해 경력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 있어요. 여기에도 두 가지 길이 있는데 하나는 저널리즘, 신문방송 등 기자직과 관련이 있는 공부를 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자신의 취재 분야 또는 관심사를 전공으로 선택하는 거에요.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 강의 등의 일을 할 수도 있고 기업으로 갈 수도 있어요. 또는 글쓰기를 전업으로 삼을 수도 있겠구요.
그 다음으로 많이 묻는 질문이 ‘제2의 경력을 준비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는 언제냐’는 질문이죠. 물론 적절한 시기라는 것은 없는 것 같아요. 각자 자신의 제2의 경력을 어떤 방식으로 준비하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고 굳이 나누자면 세 가지 정도로 그 유형을 나눌 수 있을 텐데요.
일단 기자직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느끼거나 너무 힘들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경력 5년 이내에 그만두는 것이 낫다고 봐요. 그만두기 전에 자신의 진로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하죠. 이런 경우 기자로서의 경험을 무형자산으로 활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러나 공부를 하든, 다른 일을 하든 상대적으로 시간이 충분하므로 제2의 경력을 선택하고 준비하는 데에는 유리할 거에요. 제2의 경력이 주요 경력이 될 것이구요.
다음에, 기자직이 어느 정도 적성에 맞고 재미있지만 제2의 경력도 너무 늦지 않게 시작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10년차 정도에 그만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요. 여성이므로 상대적으로 시간이 충분하므로 학업을 다시 시작해도 괜찮으며 전환점으로 하나의 일을 거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로 다시 옮겨갈 수도 있구요. 기자로서의 경력이 10년 정도 되면 그 경력을 최대한 활용해 지렛대로 삼을 수도 있겠죠? 기자 경력과 제2 경력이 비슷한 비중을 갖게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기자로서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그만두는 경우도 좋은 선택이라고 봅니다. 물론 이 경우에는 대개 언론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될 거에요. 최근 대학에서는 실무경험을 점점 높게 평가하는 추세이므로 강단에 서는 것도 가능할 것이구요. 기자 경력이 주요 경력이 되고 제2 경력은 보완하는 수준에 그치게 되겠죠.
다음에 궁금해 하는 것이 ‘기자 하다가 다른 일을 하면 가장 어려운 점이 뭐냐’ 하는 거에요. 어려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우선 ‘말을 아끼는 것’이 참 힘들죠. 기자는 어느 자리에 가서도 어렵게 느껴서 말을 아끼거나 우회적인 표현을 쓰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잖아요. 기자 생활 5년 이상 한 사람이라면 아마 자신도 모르게 모임의 대화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더구나 표현이 거칠거나 다소 무례하게 들릴 수 있는 화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살펴보아야 해요.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라면 경청하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거죠. 따라서 말을 아끼고 ‘듣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구요.
다음으로 어려운 것이라면 그 땅에 발을 붙이는 것을 들 수 있어요. 기자는 대체로 나라를 걱정하고 사회 전반의 문제점을 비판하려 하는 사람이에요. ‘일신의 영달’을 꾀하기 보다는 공동체 지향적이며 거시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거대담론형이라고 할까. 하지만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조금이라도 빨리 ‘기자로서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어떤 기자분들은 취재원들이 ‘기자’를 대우해주는 데 익숙해져 버려서 기자를 그만두고도 예전만큼 대우를 못 받으면 상처를 받는 경우도 봤어요. 새로운 직장에서 동료관계를 제대로 형성하려면 ‘기자시절 때 빼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또 유의할 점을 하나 말씀드리면, 전직 기자로서 기자를 대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거에요. 전직 기자는 기자가 아니죠. 그런데 그걸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거든요. 특히 홍보업무를 담당하게 되는 경우 자신의 정체성을 철저하게 홍보담당자로 자리매김해야 되는 거에요. 불과 몇 달 전까지 동료였다고 해서 후배로 취급하거나 절친함을 무기로 삼으려고 해서는 안 되는 거죠. 때로는 후배 기자가 선배로 대접해주기도 하는데 그건 고마운 일이지 당연한 것은 아니거든요. 첫 만남에서 대뜸 내가 어디 기자였노라고 먼저 밝히기 보다는 친해진 후에 자연스럽게 얘기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 좋겠죠.
여러 가지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했는데...... 한가지만 더 해볼께요. 기자 생활을 하면서 제2의 경력에 도움이 되려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냐는 건데요. 일단 기자는 업무를 통해 자연스럽게 몇 가지 중요한 능력을 갖추게 되죠. 이건 어디가서 어떤 일을 하던 도움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전 이런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이 능력이 어떤 거냐 하면, 일단 듣기, 읽기, 쓰기 능력 같은 걸 들 수 있겠죠.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기본이 되는 능력이죠. 다른 어디를 가셔서도 언제나, 어디서나 핵심이 되는 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상대의 말을 잘 듣는 것, 수없이 많은 자료를 읽고 핵심 파악하는 능력 이런 것도 마찬가지구요. 또 자료를 요약하는 것이든,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든 간에 정연하게 글쓰기. 이런 것들 있죠. 말하기까지 잘 하면 금상첨화죠. 이런 능력은 기자시절 거의 매일 훈련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늘 갈고 닦으면 기자로서, 또 제2의 경력에서 모두 유용해 질 수 있는 것이죠.
또 기자로서 도움이 되는 능력 중 하나가 마감시간을 맞추는 능력이에요. 여러분도 그러시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마감은 맞추고 살잖아요. 이 경험은 이후 저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공부를 하든, 공무원으로서 활동하든 마감을 맞추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구요. 반드시 마감 안에 끝내는 습관 때문에 ‘잘 훈련된 프로페셔널’로서 인정받게 되더라구요. 마감이 닥쳐야 시작하는 버릇 때문에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요.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네트워크에요. 기자를 그만두면 취재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는 다시 안 만나게 될 줄 알지만 그렇지가 않거든요. 기자와 취재원으로 만났지만 진심이 통했던 사람들은 이후에도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었고 어려운 순간에 응원을 해 주는 관계가 되는거죠.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 몇 명이나 남을까하고 물어보는거죠. 내가 기자가 아니어도 웃는 얼굴로 밥을 먹고 사는 얘기를 나눌 사람이 하고 생각해 보세요. 그렇다고 기자로서의 정체성을 버리라는 뜻은 아니구요. 오히려 경쟁력 있는 기자가 되어야겠죠. 그렇지만 기자의 경쟁력이 어떤 상대를 제압하려는 듯 매서운 눈빛, 반말투의 거침없는 화법, 강한 비판성 기사 이런데서 나오는 건 아니겠죠? 오히려 부드러운 말투나, 예의 바른 몸짓, 자신의 기사에 책임을 지는 태도, 공부하는 자세...... 이런게 기자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3부: 여기자의 성공적인 커리어 관리 Ⅱ>
- 강사 : 홍은희 명지대 교수(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사회자 : 여기자의 성공적인 커리어 관리라는 주제로 두 번째 강연을 들어보겠습니다. 한국여기자협회 전 회장님이신 홍은희 교수님이십니다. 한 분의 여기자로서 또 여기자협회 전 회장님으로서 너무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셨고 그 끝에 지금은 많은 기자 선후배의 관심과 애정 속에 명지대 교수로 부임하셨는데요, 홍은희 교수님을 소개합니다.
홍은희 교수 : 안녕하세요. 명지대학교 교수 홍은희입니다. 이제 20일 부족한 28년을 뒤로 하고, 기자 생활을 접은 지 벌써 두 달이 가까워져 오고 있네요.
30년이 지나면 새로운 세대로 넘어간다고들 하죠? 저는 얼추 그 비슷한 시기에 청춘과 함께 해온 직종과의 관계를 정리한 것 같아요.
한국여기자협회 세미나의 제2주제가 ‘여기자의 커리어 관리’라고 하더라구요. 이 주제에 대한 발제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니까 내가 걸어온 세월이 과연 자랑스러운 건가...... 여기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기자, 그 중에서도 특히 여기자로서 살아온 게 27년 11개월이네요. 어떤 때는 빛나고 화려했고, 때로는 어둡고 우울했던 것 같습니다. 한 편으로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고, 다른 한 편으로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인생이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듯 해요.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고, 희망과 절망이, 늘 교차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을 가끔 하는데요. 빛나는 기자생활이 아니었던 나의 경험인데, 부푼 희망을 안고 정진해야되는 후배 여기자들에게 과연 보탬이 될 수 있을까.... 하고 사실은 좀 망설여졌던게 사실이에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세미나에 참석하기로 한 것은요, 오늘, 지금 여기에서도 분명히 같은 어려움으로 고민하고, 좌절하는 후배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온겁니다. 여러분들에게 나의 인생설계가 비록 가냘프지만 어둠을 뚫고 갈 수 있는 실오라기라도 될 수 있다면 말이죠. 여기자의 길을 먼저 걸었던 선배로서, 또한 인생의 길을 몇 걸음 앞서 걸어온 여성이니까. 먼지가 수북한 낡은 손전등을 켜는 기분으로. 기꺼이 지나온 나의 길을 더듬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우선 제 방식으로 성공하기란 이야기를 꺼내 볼까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그 뒤에 졸업도 하기 전에 일찌감치 취업을 하게 되었었죠. 여기에서부터 이른바 메이저신문인 중앙일보의 논설위원으로 마감하기까지. 언론인으로서 살아온 저의 지난 날은 한마디로 ‘시대’와 함께 하고 있다고 밖에 할 수가 없네요. 때로는 ‘변한 시대’의 덕을 보았고, 때로는 ‘여전한 시대’ 때문에 분루를 삼키기도 했던 날들입니다. 젊은 시절에는요, 때로 는 세월을 탓했고, 원망하기도 했는데요.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시대를 넘어설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던 것 같네요.
1977년은 경제호황기였죠. 이때 기업들로 하여금 ‘신입사원 모셔가기’경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대학졸업생치고 적어도 두 군데 이상에서 취업승락을 받아놓지 않은 이들이 드물었던 때죠. 그렇지만 전 취업보다는 공부를 계속하고 싶더라구요. 하지만 미국유학을 준비하던 중에 심심풀이격으로 중앙일보 기자직 입사시험에 응시했는데, 이 합격 소식은 인생의 진로를 바꾸어 놓았죠.
그렇지만 기자로서 생활은 첫 단추부터 꼬이더라구요. 수습교육이 끝나고 국별배치를 받는 과정에서 당연히 ‘편집국’에서 신문기자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했었거든요. 그런데 그 예상이 무참히 깨지더라구요. 출판국 배치를 받았어요. 그 것도 가장 순환이 느린 ‘계간미술’부였거든요. 직장의 첫 생활은 실망 가득이었죠.
제 첫 일탈은 다음해에 시도되었어요. 이듬해 1월(혹은 2월) 동아일보에서 수습기자 모집 공고를 냈더라구요. 제가 그 때 동아일보에 원서를 접수했었죠. 하지만 고민을 많이 한 끝에 시험을 치지 않기로 했거든요. 처음에 수습들에게 내걸었던 ‘순환근무’라는 중앙일보사의 인사원칙을 믿어보기로 한거죠. 출판국에 배치되었던 동기들이 하나 둘 편집국으로, 보도국으로 떠나가고 하더라구요. 저도 막차를 타고 편집국행을 했구요. 그때가 1980년 8월이니까 제5공화국의 언론인 살생부가 집행된 다음이었죠.
1981년 8월에는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석사과정에 들어간 것은 진짜 그냥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였어요. 딱히 석사학위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언젠가 기자직을 떠날 것을 대비하는 뭐 그런 이유도 아니었어요. 그냥 ‘가방끈’을 늘이고 싶었는데, 신문기자는 참으로 매력적이더라구요. 원고지의 글이 활자로 변신하면 권위와 위엄이 저절로 풍겨나는 그러니까 마술이었죠. 완전히 전 정신없이 빠져들었었거든요.
신문기자직에 매료되어가는 것과는 반대로 조직에 대해서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죠. 1985년 무렵이었을 거에요. 입사 9년을 즈음하여 조직생태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면서 직장 안에서의 제 미래를 점쳐보게 되더라구요. 제가 가지고 있는 생활방식, 가치관, 삶의 태도, 이런 것들은 성공적인 조직 생리와는 거리가 좀 멀지 않나 싶었어요. 나를 바꿀 것이냐, 아니면 성공을 외면해야 되는 것이냐, 많은 날들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했죠. 마침내 내린 결론. ‘그게 뭐냐’. 저는 제 자신을 고수하기로 했어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나의 삶이 아닌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흉내내기에 불과할 뿐일 것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쳤던 거죠. 체질화된 사람과 흉내내는 사람과의 차이는 누구든 느낄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러니까 ‘굳이 싫은 삶의 방식을 억지로 택하는 것은 내 자신을 두 번 죽이는 것과 똑같지 않겠냐’고 생각한 거죠.
성공을 외면하기로 결정하긴 했는데, 이게 한갓 오만함이더라구요. 이걸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성공이 아니라, 기자로서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더라구요. 둘째아이를 출산한 다음이었는데, 승급에서 누락된 걸 알았죠. 그때 양수가 터져 아기가 감염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도 촉진제 맞기를 거부하고 그날 넘기기로 한 두 건의 기사를 썼거든요. 진통 속에서 작성해 가지고 차질없게 출고하게 하려고 했기 때문에 충격이 더욱 컸죠. 그렇지만 그때, 저는 배신감을 누르고, 회사에 남기로 결정했어요.
인사고과권자와 면담을 했었는데 “열심히 하는 기자”라는 답변을 얻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렇다면 내 식으로 어디까지 성공할 수 있는지 보겠다’고 생각했던거죠. 이게 언론사 생활 내내 지니고 있던 제 행동의 기준이었어요.
제가 취재기자 하던 시절에는 주로 담당했던 분야가 미술, 방송, 패션, 소비자, 여성, 건축(인테리어)... 이런 거였거든요. 그래서 특종기사보다는 차별화된 기획기사로 승부를 걸었어요. 스트레이트 기사로 사회면 톱으로 실린 것도 ‘특종상’이 아니고 ‘우수기획상’을 받았으니까. 어쨌든 상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는데 그래도 이런저런 명목으로 기획상 몇 개는 받았거든요. 그러니까 직장생활동안 내내 저를 쫓아다니며 피곤하게 했던 승진누락의 덫에 대한 약간의 위로는 된 셈이죠.
여기다가 ‘시대의 덕’이 좀 보태져서, 야전사령관이라는 부장직을 6년이나 누렸어요. 별명까지 ‘부장전문’이었어요. 그 덕분에 1985년 큰 아이를 낳으며 세웠던 ‘ 편집국 최초의 출산여기자’ 기록이 있었는데, 최초의 여성문화부장, 논설위원의 기록까지 더해졌죠.
물론 나중의 그 두개 ‘중앙일보 최초’ 기록이 순탄하게 얻어진 것은 결코 아니죠. 외환위기 때문에 조직에서 군살빼기와 축소작업이 진행되는 중이었거든요. 그때 제가 맡고 있던 생활과학부는 조직표상에서 아예 사라져 버리면서, 입사 4년 후배가 맡고 있던 경제부로 흡수통합 되었어요. ‘내 식의 성공은 여기까지’라고 생각을 했죠. 그래서 전 ‘조직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면서 사표를 던졌어요. 그런데 그 사표는 일주일간 수리되지 않더라구요. 그리고 선배들께서 충고하셔서 결국 그 인사를 받아들였어요. 만약 그 때 끝내 의사를 번복하지 않았다면 문화부장의 기록은 이루지 못했겠죠?
그리고 고비는 또 있었네요. 문화부장에서 편집위원으로 발령난다는 통지를 받았을 때였어요. 전 이제 정말로 ‘조직이 판단한 나의 효용의 한계구나’ 하고 받아들였어요. ‘이리저리 골방을 옮겨다니며 서서히 시들어가다 조직을 떠나는’ 그런 ‘조직원의 자연사’의 과정. 그게 정말 생리적으로 저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두 번째로 사표를 제출했죠. 조직에 부담을 주지 않고 스스로 새 출발을 해야겠다, 이렇게 다짐했죠. 그런데 이번에도 사표가 한 달 가까이 수리되지 않더라구요. 조직과의 인연은 아직 끝이 아니었던 거죠. 결국 이번에도 회사의 명에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때도 마찬가지죠. 역시 끝까지 내 결정을 고집했더라면 논설위원의 기록을 세우지 못했을 거에요.
‘내 방식으로 성공하기’에서 스스로 다짐했던 것이 있다면,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어요. 결과에 대한 판단이 나와 조직이 다를 때, 조직의 결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던 거죠. 그러나 그 기저에는 ‘가장 소중한 것은 내 자신’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 자신이 ‘조직이 그만 나가주기를 바라는 천덕꾸러기’가 되지 않도록 늘 경계했죠. 조직이 떠나라는 사인을 구체적으로 내리기 전에, 한 발 먼저, ‘숨겨진 사인’을 읽어내려고 애를 썼어요. 조직 전체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의 나의 위치랑 연결을 지어 현재와 미래를 판단하는 힘, 이런 게 이런 과정을 통해 길러졌습니다.
여러분, 한 때 사랑했던 연인들도 언젠가 이별을 하죠.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별의 시기에요. 너무 늦은 이별은 찬란했던 사랑을 할퀴고 녹슬 게 할 거에요. 그러나 불행은 ‘언제가 적당한 시기인가’를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사랑을 영원히 아름답게 간직하려면 조금 빠른 작별이 오히려 낫습니다. 지난 8월31일 기자직을 정리하고 교수로 변신한 것은 이런 뜻에서 였어요.
여러분께, ‘인생의 큰 틀을 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조직의 숨겨진 사인을 읽어내는 데에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피터의 원리’, 들어보셨죠? 저에게 있어 ‘피터의 원리’는 큰 도움이 되었어요. 피터의 원리가 이런 거죠. 행복한 조직생활을 하기 위한 방법인데요, 승진할 자리 보다 그 다음 번 승진 자리를 쳐다보고 승진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라는 충고에요. 그러니까 예컨대 자신이 어떤 부서의 차장이라면 그 부서의 부장을 꿈꾸며 노력을 경주하지 말고, 그 부서의 장이 다음번 어떤 자리로 승진하는 것인지를 살펴보고, 이게 포인트죠. 그런 다음 자신이 그 부서의 장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판단하라는 거에요. 저는 이 원리를 이용하여 조직을 들여다 보았어요. 현재의 직급, 그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면면들, 다음의 자리, 다음 자리가 요구하는 일, 그에 맞춘 사람들의 면면을 분석하고 예상도를 그려나갔죠. 그 가운데 제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현재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자리와 주어져도 할 수 없는 일들도 생각해 보았구요. 그렇게 하니까 제 미래에 대해서 답이 나오더라구요. 누구보다도 잘 할 수 있다고 저 스스로 판단한 일이 저에게 주어지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는 먼저 일정기간 기다리면서 다음 기회를 보고. 이건 사표소동으로 배운 교훈이기도 하죠. 그러면서 최선을 다하다가 마침내 기회가 오지 않으리라는 ‘숨겨진 사인’을 읽으면 미련 없이 꿈을 버리기로 한 거에요.
기자직을 떠난다는 것은 정말,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자직 뿐 아니라 어떤 조직에서 일을 하더라도 그 조직과 결별하기란 쉽지 않을 거에요. 더구나 다른 일과 역할이 예정돼 있지 않다면 자의적 결별이란 거의 불가능한 게 아닐까 싶은데요. 조직의 울타리는 그만큼 안온하고 달콤한 것이기도 하죠. 그러나 자신이 설립한 회사라고 해도 마찬가지에요. 언젠가는 은퇴해야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그걸 피할 수는 없습니다.
저한테 ‘인생의 큰 틀 짜기’를 가르쳐 준 사람은 후배에요. 언론계 경력으로 따지면 10년도 더 뒤쳐진 후배이지만, 그는 일찌감치 ‘인생의 큰 틀 짜기’를 익히고 실천해 온 사람이에요. 차장 진급을 앞둔 고참 기자시절이었는데, 같은 부서에서 일하던 젊은 후배 얘기였어요. 자신이 세운 삶의 여정과 실천과정을 들었는데, 정말 그제서야 신문 기자생활에 흠뻑 빠져 앞뒤 좌우도 살펴보지 않고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라구요. 반성했고 계획을 세웠죠. 그때 당시 분위기로서는 45세 정도이면 조직에서 수명을 다할 것 같더라구요. 몇 년 뒤에 일본 연수를 다녀오고 난 다음에는 계획을 50세로 정정했어요. 세상은 변하고 있었고, 특히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급속도로 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일본연수를 다녀온 뒤 한 대학에서 강의를 요청해왔어요. 대학 강단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었죠. 아마도 석사학위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죠. 그렇지만 전 석사과정 입학에도 물론이고, 학위를 딴 이후에도 강단과 나를 연결지어 생각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캠퍼스를 오가니까 자꾸 박사학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솟아나더라구요. 딱히 그것으로 ‘교수가 되겠다’ 뭐 이런 구체적 계획은 없었는데, 그래도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의 마지막이 ‘박사학위’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더라구요. 조직에서의 삶이라는 게 자신이 좌우할 수 있는 부분이 극히 적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던 것 같네요.
아니면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50 이후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의 힘이 작동했을 수 있겠구요. 큰 틀 짜기는 이렇듯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새 미래를 준비하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조직과 빠른 이별을 해야 할 시기라고 판단했을 때 제가 기댈 수 있는 확실한 물증이 박사학위증이었죠. 현장에서 풍부한 경험을 축적한 많은 이들이 대학강단을 꿈꾸죠. 꿈꾸지만 벽에 부딪치게 하는 게 바로 학위문제에요. 대학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 흔한 학회조차 단 한군데도 가입하지 않았지만, 제2인생은 내 손에 쥐고 있는 학위증으로부터 펼쳐지더라구요.
박사학위를 받고 난 이후 전 사회생활 은퇴 이후의 생활을 그려보곤 해요. 아직 밝힐 수는 없지만 대체적인 윤곽은 잡혀져 있습니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어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가볍게 던진 정보라도 귀담아 들으며 하나 둘 주춧돌을 놓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꿈이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싶네요.
이제 이야기를 정리해야겠습니다. 30년 가까이 언론계에 종사하다 현직에서 곧바로 대학으로 옮긴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더라구요. 제 전직에 대해 선후배들이 많은 축하를 해주고, 관심어린 눈으로 지켜봐주는 것은 이런 까닭이 많겠죠. 그렇지만 전 후배들이 언젠가 닥쳐올 미래, 그것을 위해 오늘 박사학위를 따는 일에 열중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언론인으로서 가장 성공한 인생이라면 단연코 언론계에서 성공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이제는 여기자의 수가 서울의 신문·방송·통신만 해도 6백명에 육박하고 있어요. 제가 기자로서 자라왔던 시대와는 결코 같지 않은 시대입니다. 이제 중앙일간지에 여성정치부장, 편집국장, 주필, 사장이 나오고, 방송사에도 부국장, 논설실장이 나오고 있어요. 이제 어쩌다 한 명이 나오는 식은 끝나야 합니다. 언론계의 여성 주류화는 기필코 달성해야 할 후배들의 과제이기도 하구요.
그렇지만 다만, ‘일에 치여서, 또는 조직에 함몰돼 자신의 인생 전체를 관조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빚어서는 안 된다’는 걸 말하고 싶네요.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박사학위가 아니라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이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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