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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년 만의 한국일보 여성 정치부장 - 최문선
작성일2020-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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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년 만의 한국일보 여성 정치부장 선임
최문선 한국일보 정치부장 "남성 흉내 않고 나다운 모습 지키겠다"
글: 한국일보 이혜미 기자
‘엄마 같은 포용력’, ‘누나 같은 섬세함’, ‘언니 같은 리더십’.
최초를 기록하거나 큰일을 맡은 여성들에게 흔히 따라 붙는 상투어다. 의도치 않게 이 수식어는 많은 여성들에게 족쇄로 작용한다. ‘여성의 리더십은 이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결국 여성 리더를 프로페셔널이 아닌 분위기 메이커 역할에 가둬버린다. 그리하여 여성 리더는 업무적 성취를 이뤄야 할 뿐 아니라 구성원을 달래주고, 끌어주고, 보호해주고, 위로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다.
50여년 만에 여성 정치부장으로 부임한 최문선 한국일보 정치부장은 이러한 수식어를 거부한다. ‘나다운 부장’이 될 것이라 했다. 어설프게 남성을 모사하는 것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누구나 식별할 수 있는 하이톤의 목소리를 구태여 숨기지도, 성인지감수성 낮은 발언에 대한 까칠한 반격을 주저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트려 훗날 함께할 여성 후배를 위한 길이라고 그는 믿는다. 1월 31일 최 부장을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만났다. 선후배가 편하게 나누는 대화인 점을 감안해, 인터뷰의 모든 발언을 일상적인 말투로 기술했다.
◇이하 일문일답
- 흔히 언론사 정치부장하면 '중후함'을 떠올리잖아요.
“부서에 전화가 와서 받으면 정치부장을 바꿔달래. 전화를 받고 있는 내가 당연히 여성 직원인 줄 아는 거지. 그러면 상대방에게서 ‘헉, 부장이 남자일 줄 알았다’는 말이 되돌아 와. 오랫동안 ‘정치부장’이 40~50대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거지.”
- 하이톤의 목소리, 붙임성 좋은 말투, 심지어 가죽 재킷에 컨버스화를 즐겨 신는 패셔너블한 모습까지. ‘인간 최문선’은 중후함과는 조금 거리가 먼 캐릭터 아닌가요?
“’그 모습에 나를 맞춰야 하나?’하는 생각도 해 봤어. 목소리도 낮게 깔고, 머리를 자르고, 남성적 권위를 보이는 행동을 의식적으로 해야 하나.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게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까? 여러 가지를 고민했을 때 나와 한국일보와 후배들에게 가져올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어. 그런 편견이 있는 한 ‘여자가 무슨 정치부장이야’하는 소리를 여자 후배들이 영원히 듣게 될 거야. 그래서 나는 그냥 ‘나다운 부장’이 되기로 했어.”
- 저마저 느낄 만큼 ‘50여년 만의 정치부장’이라는 수식어의 무게가 결코 가볍진 않을 것 같아요. 처음 정치부장 제안을 받았을 때의 기억을 들려주신다면요.
“제안을 받았을 때, 좋았다기보다 ‘큰일이다!’ 싶었어. 무거운 마음에 여자 선배들에게 조언을 많이 구했지. 한 분이 물컵에 물이 절반 남았을 때, 누군가는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고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물이 반 밖에 안 남았네’ 하는 비유에 빗대어 조언을 해주었어. 똑같이 능력이 50% 있어도 쉽게 받아들이는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은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한다는 거야. 그것 자체가 여자의 길을 제약하는 이유라고 생각했어.”
-그래도 얼마나 부담스러울지 저는 상상도 안 돼요.
“책임감이 몰려왔지. 내가 여기서 ‘저 못하겠어요’ 우물쭈물 하면 앞으로 ‘여자들은 큰 역할 하기 싫어하는구나, 자신 없어 하는구나’ 인식을 줄 수 있잖아. 내 소극적인 태도가 후배들의 앞길을 막을 것 같았어. 해묵은 논리지만 여성 1명이 못하면 전체 여성이 비난 받는 구조가 여전히 언론 내에서 작동하고 있으니까.”
- 여기자가 정치ㆍ경제ㆍ사회 등 주요 부서 현장을 뛰긴 어려웠던 시기에 14년 동안 정치부 기자를 하셨어요.
“예전에는 ‘어디 여자가 정치부를...’ 이라는 인식이 만연했어. 너무 당연하게 내 담당은 ‘영부인’, 하다못해 ‘김정일 위원장의 부인들’로 정해져 있었던 때도 있었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 흔히 정치부 기사는 ‘따옴표 저널리즘’이라고 해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잖아요.
“정치에 있어 제일 부족한 게 ‘다양성’이야. 정치가 이를 보강하는 방향으로 가게 하는 기사를 만들어 내는 게 과제라고 생각해.”
- 정치부장으로서 늘 강조하는 ‘기사를 위한 기사를 채택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그 때문인가요?
“지면 중심이었던 과거와 달리, 이젠 소수의 레거시 미디어만이 정치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지 않잖아. 그런데 정치부 기자 생활을 시작했던 2000년대 초와 지금을 비교해봤을 때, 세월의 변화를 정치부 기사 문법이 못 따라가고 있는 상황이야. 정치부 기사의 문법을 바꾸고 싶어. 유명인 발언 위주의 상투적인 기사를 지양해야지. 정치 기사를 ‘정치 발전을 위해 쓴다’고 하잖아. 그걸로는 부족해. 정치를 바꾸는 목적은 사회 발전이어야 하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정치 기사를 써야 한다고 생각해.”
- 지난 10월 한국여기자협회 조사에서 한국일보는 여성 보직부장이 없었는데, 이번 인사에서 부장이 보직을 맡으면서 편집회의 풍경에도 변화가 생겼을 것 같아요.
“이 세상 절반이 여성이면 당연히 편집회의에도 여성의 수가 늘어야 하지 않을까. 부장으로 앉아 있으면, 회의 참석자들이 토론을 할 때 조심하시지 않을까? 다양성 이슈나 소수자에 대한 편견 관련 아이템이 안건으로 올라오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관철하는 데에 힘을 실으려고 해.”
- 어떤 부장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엄마 리더십’, ‘언니ㆍ누나 리더십’ 이런 걸 원하지 않아. ‘필요할 때 화내고 필요할 때 북돋아 주는 부장이었다’로 기억되고 싶어. ‘와, 최문선 정말 사람 좋아요! 마감을 안 지켜도 화를 내지 않아요!’ 이런 평가는 오히려 내겐 모욕으로 느껴질 것 같아. 다만 ‘개인적인 컨디션’ 때문에 선을 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 약속해.”
- 여러 문턱 앞에서 좌절하고 그만두고 싶어하는 여성 후배 기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
“‘꼭 기자를 해야 돼요!’라고 말하고 싶진 않아. 만약 오로지 ‘여자라는 이유’로 핸디캡을 느끼고 있다면 이 말을 해주고 싶어. ‘조금만 더 같이 버텨봅시다’라고.”
- ‘같이 버텨보자’라… 참 힘이 되는 말이네요.
“여성 후배들이 언론계에 많이 들어오면서 문화가 바뀌고 있어. 일상적인 성차별 발언을 면전에서 하지 않는 것만 해도 정말 큰 변화야.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달라지고 있으니 ‘같이 버티자’고 말하고 싶어. 결국 중요한 건 ‘쪽수’니까. 쪽수가 정치다. 그러니 조금만 더 다 같이 버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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