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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해외연수기] 도시락과 무상급식_국민일보 조민영
작성일2020-01-22
조회수3497
![[2019 해외연수기] 도시락과 무상급식_국민일보 조민영](/upload/board/memboard/조민영_1차_섹션용.jpg)
도시락과 무상급식
국민일보 조민영
Portland State University(미국 오레건 포틀랜드)
미국 땅에서 아이 둘과 함께 시작한 연수 생활은 말 그대로 삶의 연장선이다. 대학생 때 어학연수, 이후 여행이나 출장으로 숱하게 외국을 나가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결의 경험들을 하고 있다.
다름은 짐싸기 단계부터 등장했다. 미국에서 초등학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는 꼭 챙길 아이템 중 하나로 보온도시락 통을 강조했다. 초등학교 4학년, 1학년 아이를 한국에서 키우는 동안 ‘무상급식’ 덕에 한 번도 들여다볼 필요 없었던, 그 원통형 보온도시락. 도시락 통을 고이 챙겨 이민 가방에 넣던 때 마음은 사뭇 비장했다. 내 학창시절엔 당연히 받았던, 엄마가 매일 아침 싸주던 도시락의 반찬들도 떠올렸다. 그 시절 엄마들은 몇 년씩도 했던 일인데, 1년을 못하겠나. 싶기도 했다.
연수 생활 5개월 차. 실상부터 말하자면 엄마 표 한식 도시락의 빈도는 일주일에 평균 2번 정도로 줄었다. 처음 한 달은 한식파인 큰 딸의 바람에, 워킹맘으로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보상심리가 겹쳐 새벽잠 설쳐가며 연일 정성껏 도시락을 쌌다. 그런데 아침 간식에 도시락까지, 더구나 입맛과 나이가 다른 두 아이를 고려해 따로 메뉴를 매번 준비하는 부담은 생각보다 컸다.
마침 아들이 다른 친구들처럼 학교 급식, ‘school lunch’를 먹고 싶다고 나섰다. 딸은 다른 현지인 친구들의 도시락 메뉴에 대해 “솔직히 도시락이랑 스낵이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이라고 평했다. 젤리 샌드위치(잼 바른 식빵) 또는 햄치즈 샌드위치 정도면 양호한 편, 그냥 과자 같은 걸 먹기도 한다는 것이다.
매일같이 ‘엄마표 도시락’을 싸주지 않아도 크게 미안할 건 없다는 명분이 여러 방면으로 확보되자 마음이 조금 자유로워졌다. School lunch 메뉴를 프린트 해 아이와 고르기 시작했다. 한 끼 4000원 꼴, 거기에 제공되는 메뉴의 수준(건강 측면에서)을 보면 여전히 속은 쓰리다. 그러면서도 편한 맛을 본 이상 다시 ‘매일 도시락’으로 돌아가진 못하고 있다.
이는 이곳에서 만난 모든 한국 엄마들의 공통된 스토리기도 하다. 대부분 같은 시작과 같은 고민을 거치는 중이거나, 거쳤다. 미국 학교 급식에 내는 돈이 아깝다는 지점에서 엄마들 간 공감지수가 특히 높아진다.
2019년 12월 학교 급식(School lunch) 메뉴.
매달 메뉴를 프린트해서 아이와 보며 학교 밥을 먹을 날과 엄마 도시락을 싸가고 싶은 날을 정하고 있다.
미국식 식단이 우리와 입맛으로나 정서적으로나 탐탁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경험한 무상급식의 영향이 결정적이다. 영양사 관리 감독 하에 영양 균형을 맞추고 밥과 국, 반찬에 디저트까지 제공되는 한국의 급식이 그 자체로 얼마나 괜찮은 수준이었는지를 이곳에서 느끼고 있다는 데 이론은 없었다. 더구나 그 급식을 우리는 ‘당연히’ 공짜로 누렸다.
이 이야기를 한 미국인 친구와 나눴다. 그가 놀란 포인트는 ‘모든 학생’이 무료 혜택을 누린다는 지점이었다. 미국에서도 무료 혹은 할인된 가격의 급식을 먹는 아이들이 있다. 한국에서도 시도됐던 선택적 무상급식이다. 그런데 학교 홈페이지는 이들을 ‘If you qualify for free or reduced priced meals~, you’re eligible~’ 라고 표현하고 있다. ‘저소득층 지원대상’ 처럼 시혜를 받는 수동적인 존재로 표현되는 대신 자격이 되면 무료급식을 선택할 수 주체로 읽혔다. 반면 한국에서는 무상급식 논란이 한창이었던 때, 선택적 무상급식을 할 경우 지원 대상 아이들이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당시에는 고개가 끄덕여졌던 그 주장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 같은 차이는 미국의 기부 문화와도 떼어놓고 보기 어렵다. 미국 학교는 학부모의 기부가 필수적이다. 학기 초 참석한 학부모회에서는 “돈이 아니라면, 시간(volunteering)으로도 당신의 아이를 위한 교육에 기여할 수 있다”며 기부를 의무의 측면을 넘어 권리의 측면으로까지 강조해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큰 틀에서 정리해보면 “능력이 되면 기부를 하고 자격이 되면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한 사회인 셈이다. 어떤 제도가 더 나은지를 따지긴 쉽지 않다. 다만 같은 제도도 어떻게 받아들이게 할 것인지는 보다 섬세히 논의해 볼 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12월 중순 연수 기간 지내고 있는 Lake Oswego 지역 자선단체로부터 전해 받은 Christmas holiday 선물 박스.
왼쪽박스부터 각각 신선식품과 저장식품, 그리고 아이들 장난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여담으로 지난 11월 초 아이들 학교에서 holiday food를 신청하라는 안내서가 왔기에 호기심에 신청서를 작성해 낸 적이 있었다. 써내야 하는 정보는 아이들 성별과 나이, 주소와 연락처 정도였다. 신청했다는 사실도 잊고 있던 즈음인 12월 중순, 현관 앞에 배달된 세 개의 박스는 민망함과 놀라움, 고마움을 동시에 안겼다. 각각의 박스에는 신선 식품, 저장식품, 그리고 아이 나이와 성별에 맞춘 선물이 담겨 있었다. 교회 등이 주축이 된 지역 자선단체가 보내는 말 그대로 ‘자선 물품’을 받은 것이다. 당시 신청서 어디에도 저소득층이나 소외계층을 돕는 지원이라는 표현이 없었기에 벌어진 실수이자 해프닝이었는데, 덕분에 마음은 너무나 따스해졌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던 신청서부터 ‘누구든 즐거워야 할 크리스마스에 도움 받는 걸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는 배려가 깔려있다 느껴졌기 때문이다.
베풀 능력이 있는 사람도 도움을 받을 사람도 똑같이 대우받자는 형식적 평등사회와 당당히 베풀되 못 가진 것을 부끄럽게 여길 필요 없는 사회. 우리는 어떤 사회를 원하며, 또 만들어갈 것인가. 계속 고민해볼 이슈다.
PSU 사회학과 홈페이지에 방문학자(visiting scholar)로 정식 등록,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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