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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해외연수기] '오래 사는 인간들'... 노인 연구하는 美 대학_머니투데이 송지유

작성일2019-12-23

조회수3406

'오래 사는 인간들'... 노인 연구하는 美 대학

 

송지유_증명_크기수정.jpg

머니투데이 증권부 송지유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고령화 글로벌 거대 물결…제론톨로지(노인학) 전공 키우는 미국

-USC, 바이오·심리·사회·정책 등 노화 종합 연구하는 단과대학도 운영

-고령화 속도 빠른 한국, 노인학 연구·대책 마련 뒤처져

-‘오래 사는 국민’ 국가 재앙 아닌 축복 되려면 사회적 장치 뒷받침 돼야

 

송지유1.jpg

USC 제론톨로지 스쿨 전경.

 

  제가 연수 중인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에는 노인학을 의미하는 ‘제론톨로지 스쿨’(School of Gerontology·노인학과)이 있습니다.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대학교인 만큼 경영·법·의학·언론·엔지니어·건축·예술 등 관련 다양한 학과가 있지만, 무엇보다 노인학을 단과대학으로 키워 운영한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한국에서 노인학은 매우 낯선 학문입니다. 노인복지사 등을 양성하는 일부 전문대학이 있지만 노인학과를 둔 4년제 대학교는 없습니다.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데다 관련 이슈가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정작 노인·노년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 부족한 실정입니다.

USC 노인학과 교수들을 만나 나눴던 이야기를 전합니다. 점점 더 오래 살아야 하는 인간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봅니다.

 

  고령화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글로벌 메가 트렌드다. 특히 한국은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국가다. 1999년 ‘고령화사회’(Aging Society)에 첫 진입한 이후 19년만인 지난해 ‘고령사회’(Aged Society)가 됐다. 만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7%에 도달하면 고령화사회, 14%를 넘어서면 고령사회, 20%가 되면 ‘초고령사회’(Super Aged Society)로 분류한다.

  만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7%에서 14%에 도달하는데 미국이 72년, 영국이 46년 걸린데 비해 우리나라는 2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고령화가 더 빨리 진행된 일본(24년)보다도 빠른 속도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에 도달하는데 걸리는 기간 역시 7년으로 중국 10년, 일본 11년, 미국 17년 등에 비해 짧다. 2020년 고령인구가 800만명을 돌파하는데 이어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래 사는 인간’ 거대 물결…‘에이징(Aging)’ 연구하는 美

  고령화는 단순히 인간 수명이 길어지는 현상이 아니라 인구구조, 노동시장, 세대갈등, 산업구조, 국가정책 등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야기하는 이슈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들이 노화하는 인간과 관련해 신체·인지기능·인간관계·생활환경·의료서비스·사회보장 등 고령사회 전반을 연구하는 ‘제론톨로지’(Gerontology·노인학) 학문을 발전시킨 이유다.

미국에선 이미 수십개 대학에 노인학과가 개설돼 있고 전공자들이 정책입안부터 행정, 상담, 교육, 상품개발,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다. 최근엔 서던캘리포니아(USC)·조지워싱턴·퍼듀·미시건주립대 등 주요 대학교들이 노인학과를 경쟁적으로 키우는 추세다. 특히 USC는 1970년대 처음 전공을 개설한 이후 노인학과를 단과대학으로 격상, 인간의 노화와 관련 신체·심리·사회, 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노인학을 전담하는 교수진이 50여명(겸임교수·강사 포함 100여명)에 달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1980~1990년대 일부 학자들이 고령화 연구의 중요성을 제기했지만 종합적인 학문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아직까지 학계에 제론톨로지의 개념이 정착되지 않았고, 의학·생명과학·사회복지학 등 일부 학과에서 노화·고령화 문제를 간략히 다루는 정도다.

 

  노인학 연구 필요한 이유…“우리 모두가 늙는다” 인식 개선 필요

  “인간의 발달 과정을 분류한 표만 살펴봐도 노년층 연구가 얼마나 부족한 지 알 수 있어요. 인간 평균 수명이 60세 안팎이던 시절 만든 것을 바꾸지 않고 계속 사용하는 것이죠. 과거보다 20~30년을 더 살게 된 만큼 보다 구체적인 연구과 대비책 마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USC 노인학과에서 사회복지 연구를 맡고 있는 장유리 교수는 ‘영·유아기→아동기→청소년기→청년기→중년기→노년기’로 분류돼 있는 인간 발달과정에 대해 지적했다. 20세 이전까지의 발달과정은 여러 단계로 분류해 전문적인 연구가 이뤄지는 반면 60세 이상 노년층은 뭉뚱그려 놨다는 것이다.

 

송지유2.jpg

USC 제론톨로지 스쿨이 지난 10월 개최한 '국제노인의날' 행사 현장

 

    장 교수는 “특정 연령 이상을 한데 묶어 노인으로 일괄 분류하는 것은 개인의 업무능력이나 신체기능을 무시하는 문제가 발생할 뿐 아니라 사회적 손실도 크다”며 “노년기를 연소노인(Young Old), 중고령노인(Middle Old), 고령노인(Older Old), 초고령노인(Oldest Old) 등으로 세분화 해 정책을 구상하는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선진국에선 노년층을 74세 이하, 75~84세, 85세 이상 등으로 분류해 이미 맞춤형 복지정책을 펴고 있다”며 “신체조건, 업무기능 등 사회적 역할 수행 여부에 대한 판단까지 더해지면 더 정교한 제도 마련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노인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내놨다. 노화와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돌연변이 인간은 없는 만큼 노년층이 특별한 사회계층이 아니라는 점만 교육해도 세대 갈등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풀이다.

  “첫 수업 때 학생들에게 노인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면 ‘죽음·병·요양원·의존·악취’ 등 부정적인 단어들이 쏟아집니다. 하지만 한 학기 수업을 마무리하면서 똑같은 질문을 던지면 ‘인생과정·융통성·지혜’ 등 긍정적으로 바뀌어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노인들이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다양한 사회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엘리자베스 젤렌스키 USC 노인학과 교수는 “공동생활이나 자원봉사 등 시니어 관리 시스템만 제대로 가동돼도 노인들의 사회 고립을 막을 수 있다”며 “행복한 노년을 보내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사회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골든타임 놓친 韓”…앞 선 日, 몰려오는 中

  급속한 고령화로 사회 전반의 변화가 이미 시작됐는데 종합적인 연구와 대책이 한참 뒤처진 한국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장한 USC 노인학과 교수(생물학 전담)는 “2030년 한국 여성의 기대수명은 91세로 프랑스, 일본, 스페인, 스위스를 제치고 세계 주요국 중 최장수 모델이 된다”며 “하지만 사회 시스템이나 정책 구상은 건강한 최장수국 밑그림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보다 빠른 2006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노인학 연구가 한참 앞섰다. 2034년 초고령사회에 도달하는 중국도 다방면에서 노년학 연구와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이 교수는 “최근 2~3년간 USC 제론톨로지 스쿨 내 중국인 학생 비중이 2배 이상 증가했다”며 “길어진 인간 수명에서 새롭게 파생되고 변화하는 글로벌 시장 규모가 큰 만큼 미래를 준비하는 인재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령화는 신체·심리·사회·정책 등이 모두 맞물려 있는 거대한 물결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이 교수는 “노인질병을 감소시키거나 발병을 늦추는 것은 단순히 생물학적 연구가 아니라 노동인구 감소, 국민연금·건강보험 고갈 등 사회·정치 문제와 직결된다”며 “노년층의 건강과 행복지수에 따라 고령화는 국가 재앙이 될 수도, 축복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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